• 최종편집 2024-12-12(목)
 

지난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신학적 영향력 끼쳐

개혁주의 부흥운동, 성령의 사역 중 부흥에 무게 둬
하나님의 주권사역 거부한 인위적 부흥운동과 충돌


 

칼빈의 영향과 칼빈주의 성령론의 발전
칼빈의 신학사상이 한 사람의 독백으로 그쳤다면 오늘날 ‘칼빈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대한 신학적 유산과 교회들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추구했던 것들은 세계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신앙이었기에 지역과 언어를 초월하여 널리 공감대를 얻게 되었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칼빈에게 공감하면서도 각각 자신들의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칼빈주의 신학은 다양하게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핵심에 해당하는 중요 교리가 바로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라는 점을 공통분모로 삼았다. 칼빈주의자들은 구원의 적용을 전적으로 성령께 의존하는 가운데서만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어졌는데, 이는 칼빈 이후로 모든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활동한 그 어떤 신학자보다도 칼빈은 신학적인 영향력은 실로 방대하다.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칼빈의 위대한 신학사상은 후대의 신학자들과 경건한 성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들은 칼빈에 의해서  체계화 되었기에 후대의 성도들은 편리하게 분별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17세기로 내려오면서 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를 규명하는 「신학서론」 (prolegomena)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칼빈의「기독교강요」의 첫 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발전시킨 해답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삼위일체론을 비롯한 신론, 하나님의 경륜과 언약, 성경과 계시의 이해,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사역,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분이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가능한가에 대한 설명, 구원론의 전체 과정과 예정론의 이해, 기도의 실제와 이론, 교회의 직분과 권징, 세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 등 기독교신학에서 다루는 핵심 분야 전반의 발전이 칼빈 사상과의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범위를 좀 더 좁혀서 살펴보려는 성령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도, 정통 신학을 세우려는 17세기 기독교 교리학자들과 퓨리턴들, 그리고 최근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칼빈주의자들은 연속성을 갖고 발전시켰다.
미국에서 20세기 초엽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이 여러 개의 교단을 형성하면서 마치 성령론을 부활시킨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오순절파 교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야에서 본 것이다. 칼빈주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에서는 성령이 없었다거나 무시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신학의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1907년 미국에서 오순절파의 방언운동 이후로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어졌다는 주장도 잘못된 말이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 중에 한 가지에 해당하는 방언운동을 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미 칼빈주의 신학자들과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하여 믿음생활을 경주하여 왔고, 철저히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경건을 힘써왔던 것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장로교회에는 성령이 없어서 힘이 없고 나약하며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칼빈 당대의 문서들과 후기 칼빈주의자들이 요약한 성령론을 들여다보면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와 강조에 있어서 연속성과 지속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칼빈의 성령론에서 강조되어진 것들이 역시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칼빈주의자들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앞에서 워필드 박사가 지적한 칼빈의 성령론에 나오는 것들이 주로 칼빈주의자들의 문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령은 모든 교리의 핵심으로서 신학의 전반에서 다루어졌으나, 오늘의 성도들과 교회 사역자들이 철저히 연구하고 조사하지 아니하여 무지하게 덮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1) 부흥운동과 특별한 체험
칼빈의 성령론이 영향을 끼친 개혁주의 부흥 운동의 흐름을 살펴보면, 미국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죠나단 에드워드 (1703-1758)와 죠지 휫필드 (1714-1770)가 이끌던 개혁주의 부흥운동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독특한 회심체험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자극을 받아서 극적인 반전을 일으키는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칼빈의 입장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들은 교회사에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 가운데서 부흥의 중요성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이들 미국의 부흥운동가들은 칼빈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었고, 직면했던 신앙인들의 문제점들도 전혀 달랐다. 지금도 부흥운동은 성령의 특수한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주권적인 개념에서 볼 때에도 일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흥운동은 교회 안에서 다시 체험을 유발하고 있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지고 있다.
에드워드는 부흥운동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효과 면에서 볼 때에는 구원의 사역이란 하나님의 영의 놀라운 전달수단에 의해서 주로 수행되어졌다고 관측되어진다. 비록 하나님의 영의 지속적인 영향이 평상적으로 일반적인 범위에서는 항상 있어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위대한 일을 수행하도록 함에 있어서 취해진 방법은 항상 놀라운 표출이 일어남으로 시행되었는데, 특별한 긍휼의 열매들이 맺히는바 우리의 임무를 지금부터 더 앞으로 수행함으로써 충분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 쓰임을 받은 설교자들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 부흥운동이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부흥사가 부흥의 방법론을 확산시켜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로 인하여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부흥사들이 영광을 받거나, 부흥을 일으킨 현장 즉 어떤 특정한 교회가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 휫필드는 자신들의 사역이 놀라운 성령의 역사임을 인정하였다. 휫필드는 교단을 초월하여 부흥운동의 도구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였다. 마이크가 없던 시대에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선포한 복음이 바람결을 타고 널리 퍼지는 특수한 현상들을 체험하였다. “회심하지 않은 목회사역의 위험성”이라는 설교에 담긴 내용들을 당시 미국 장로교회 부흥운동가 길버트 테네츠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휫필드에 이르러서 뉴잉글랜드와 영국 장로교회는 설교의 강조점이 달라졌는데, 준비단계를 강조하기 보다는 즉각적인 회심을 호소하게 되었다. 이것은 요한 웨슬레의 설교에서 나온 영향이기도 하다.
2) 인간중심적 부흥주의와의 충돌
개혁주의 신학에서 성령론이 점차 소원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에 일어난 잘못된 부흥운동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부흥운동은 개혁주이 신학이 강조하여 온 기본적인 주제들 보다는 사람들의 현장체험으로 치우게 되어졌다. 따라서 개혁주의 진영은 전혀 부흥운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성령의 일상적 사역에 대해서만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흐름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난 것은 챨스 피니 (Charles G. Finney)가 주도한 19세기 초기 부흥운동은 1837년 구학파(Old School)와 신학파 (New School)로 나뉘어졌다. 에서 나타났다. 피니는 부흥설교에서 먼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사용하도록 자극했다. 성령이 설득하는데 도움을 주고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고 깨닫고 듣는데 심리학적인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회심하도록 유도하였다. 피니의 인본주의적인 부흥설교는 성령에 대한 신학적 곡해이자 나쁜 방법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죤 네빈은 부흥운동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피니의 방법이 지닌 모순점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미국적 낙관론과 복음적인 알미니안주의와의 혼합“으로 전개되자 개혁주의는 거의 동참하지 않았다. 다만 무디 (Dwight L. Moody, 1837-1899)의 부흥운동은 피니와 다르다고 확신하였던 챨스 핫지 박사가 적극 후원하였고 신학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지도해 주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성령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당대의 잘못된 성령운동의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워필드 박사는 로마 가톨릭, 알미니안주의자들, 웨슬레안들, 퀘이커주의자들, 정숙주의자들, 케직사경회 운동 등에서 ‘완전주의’라는 공통분모가 발견하였다. 이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죄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되어 있다고 설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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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성령의 신학자, 요한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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