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사순절에 춤추는 술람미


J 선생님, 그렇게 훌쩍 떠나신 지 벌써 삼십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삼십년. 굳이 공자의 삶의 확고한 뜻을 세운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을 들먹이지 않는다 해도 삼십년이란 세월의 나이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무 살 즈음에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 세>>를 읽으며, 그 삼십세가 나하곤 아주 먼 나이먹은 여인의 격정으로 느껴지면서도 공감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학문이나 명예가 사랑하는 한 남자를 위해 요리하나 못 해 주는 현실에, 실상 자신은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하다는 거친 언어들에 몰입되기도 했지만, 지금의 <삼십세>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바벨론 포로였던 슬픔의 퇴적더미 텔아비브(그발강가)에서의 에스겔의 <삼십세>. 그 삼십세가 번개처럼 영혼에 꽂혀 옵니다. 짙은 잿빛 먹구름 속에 광채가 번쩍이고 하늘이 열리는, 절망 속에 희망을 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땅이 아닌 하늘에 있음을, 그 보좌는 늘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봅니다. 잊혀졌던 주님께서 주신 비전이 영화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J 선생님, 개구리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적 있으신지요? 2015년 2월 22일, 사순절 이른 아침, 여느 개구리 울음과는 상이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주 특이한 짝을 향한 구애의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제법 굵다란 저음으로 위압적인 소리로 신부를 찾는 신랑의 음성 같은 소리도 들렸습니다. 특별한 사랑을 찾는 소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여튼 확실한 건 제 생애 처음으로 그들만의 합동 혼인잔치에 하객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 선생님께 목격한 바, 들은 바 증인으로 쓰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사명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실상 제 주님께서도 저를 향해 ‘ 내 사랑 어여쁜 자야 일어나 어서 가자꾸나 ’하며 손잡으시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렘으로 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개구리들의 혼인잔치에, 어젯밤에 마신 블루베리의 향기가 맴돌 때, 사순절, 비아돌돌로사, 시 한 편이 제 손에 쥐어졌습니다.
‘주님 가신 길/ 너는 그 길을 아는가 … 십자가의 길/ 너는 그 길을 보는가 … 고난의 길/ 너는 그 가시밭길 걷는가 … 죽음의 길/ 너는 그 십자가에 오르는가// 부활의 생명은/ 죽음에서만이 움 트이기에/ 나는 어둠 속에서/ 부활생명의 빛이/ 어디서 오는가를 알기에// 그 빛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 / 어찌 나를 버리셨냐는/ 찢어진 수의 입고/ 자기 희생 골고다/ 언덕을 넘어선 /갈보리 십자가의/ 피꽃임을 알기에// 부활생명 나무는/ 자기 죽음의 피를 먹고/ 꽃피는 것임을// 앞서 간 이들은 이 진리를 깨우쳤기에/ 수많은 종들이 한 뜻으로 향한 그 길// 비아 돌로로사// 나는 그 길을/ 인도받는다/ 캄캄한 흑암 속에/ 주님의 참빛으로’ - 원헌영 목사
누구보다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신 J선생님, 눈치채셨나요? 그러니까 설날, 앞에 말했던 30여년 전 금정산 정상에서 불꽃나무 한 그루되어 <주님고대가> 부르며, 에스겔처럼 “생기야 불어라” 하며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말씀으로 오신 그분의 기쁜 소식을 온누리에 선포하던 그 기도의 씨앗이 실제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아직은 커다란 바다(얌)까지 가지 못했지만 가덕도와 거제도를 발로 밟고 망망하게 펼쳐진 쪽빛 바다와도 만났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또다시 절 놀라게 하셨습니다. 카롤 베이커가 나오는 영화 < 기적>에서처럼 그날은 하늘에서 비가 내렸고, 제 영혼은 외경에 얼굴과 두 팔과 두 발과 온 몸을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 <삼십세> 된 사슴 눈을 한 친구와 이름에 기쁨이 세 번이나 들어있는 배려 깊은 친구도 만났습니다. 그뿐인가요? 기도의 손을 그린 뒤러의 친구처럼 제 뒤에서 기도해 주며 흔쾌히 여행길을 재촉해 주던 오랜 친구들의 말없는 격려…. J 선생님,  더 이상 제 모습에서 메마르고 늙은 얼굴을 찾지 마세요. 봄날, 하얀 웃음 터뜨리는 매화처럼 사순절, 십자가 사랑에 부활의 생명으로 기뻐 춤추는 술람미 여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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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춤추는 술람미 - 이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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