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3(목)
 
joo.jpg
 고린도전서를 읽노라면 어느 서신에서 보다도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복음서임을 독자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오늘의 잘 구성된 교회를 갖춘 입장에서, 교회론적인 안목으로 보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지만 사회학적인 입장에서 고린도교회의 사정과 형편을 살펴보면, 세상에서 이렇게 혁신적이면서 전에는 꿈도 꾸어보질 못한 새로운 사회집단을 형성하는 역동을 볼 수 있다. 당시 사회는 5%의 소수 특정한 집단이 모든 사회를 통제하고 독점하던 시기였다. 엄격한 상하 남녀노소의 차별과 자유인이 있는가 하면 노예들이 있었고, 글을 아는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진리를 알려하는 이들에게 폐쇄되어 있었고, 그 지식마저도 독점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모든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가치관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서 자율적으로 모여드는 집단이 있었는데, 바로 그 모임이 크리스천의 교회였다. 이들의 공통점을 말하려면 한 복음을 듣고 믿으며, 한 성령을 받아 마시고, 누구에게나 차별을 두지 않는 똑같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교회 바깥세상에서는 신분과 계급과 종교와 소유와 지식 유무로 인한 차별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 안에는 로마 시민권자도 있었고, 자유인들도 있었고, 귀족도 있었고, 지혜자들도 있었고, 개종한 유대인들도 있었고 노예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집단에서 누가 크냐? 누가 더 좋은 은사를 받았느냐? 하는 문제들이 일어나서 소란스러워졌고, 그 염려스러운 상황은 부랴부랴 바울이 보낸 일차, 이차, 삼차 서신으로서 질서를 바로 잡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교회를 바르게 균형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도의 태도를 보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세상의 모든 특혜를 거머쥔 5%의 그룹에 속한 이들이 그 안에 없을 리가 만무하였고, 큰 저택의 거실을 교회에게 내어준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저녁시간에 모일 때에 식탁의 교제를 갖기 위해서 넉넉한 식사량과 포도주를 갖고서 참석한 이들이 있었으나, 반면에 주인 밑에서 잔일을 모두 설거지하고 늦게 참석하느라고 식사도 하질 못하고 예배에 참석한 노예들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의 현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가진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는 일들이 바로잡히질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에는 부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던 같다.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불이익을 당하고 부자유하게 살던 이들 중에, 성령의 나타남이 그들 중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항상 있어왔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적으로 중요시 되고 과시될 수 있는 존재감을 성령의 은사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출애굽기나 사도행전에서 보면,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 성령에도 충만하였음을 모세에서 보여 졌고, 스데반은 초대교회 교인들 대표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을 압도하는 능력과 성령의 지혜를 갖춘 것과, 지식인들이 은사에도 뒤지지 아니하고 영성과 열매에 앞서있었던 사례가 사도바울에게서도 나타난 바이었다.

 그러나 성령은 교회제도권의 권위와 질서에 맞추어서 운행하시질 않는다. 성령이 교회제도에 맞추어서 운행하도록 규제한다면, 성령을 교회제도 안에 가두는, 성령을 소멸하고 훼방하는 죄를 서슴없이 짖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세속적 구조에서 이미 5%의 집단은 모든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 5%의 집단이 교회에도 들어와서 로얄패밀리로서의 대접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서인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질 못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성령의 나타남으로 인한 충격에서 서로를 낮추어보고 무시하는 일들이 한동안 비롯되었던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혼란인가? 5%만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세상에서, 세속적 가치관과 구조가 새로운 그리스도의 통치의 질서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경이롭고 놀라운가? 부자들도 지식인들도 권세자들도 성령의 인치심을 받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는 그 5%가 세워놓은 기성질서에 순응되질 아니하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성령론적인 교회로서의 질서였다.

 오늘날 성령의 나타남이 흔적도 없이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리고, 금권과 지식과 사회적 명사가 로얄패밀리로 자리 잡아 제도화된 교회들로 점령된 것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할까?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 10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