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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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교 선교사(북한 농아축구팀 감독)
 

산속에 살았던 물고기를 전라북도 남원으로 보내고, 소록도로 보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고, 카자흐스탄으로 보내고, 북녘 땅으로 보내고, 땅 끝으로 보내고….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아니면 내가 원해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땅은 나의 원함대로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일까?



소록도 한센인들이 전해준 복음

우주베키스탄 농아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카자흐스탄 농아축구 국가대표 감독으로, 그리고 지금은 북한 농아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며, 전 세계에서 축구를 통한 하나님 선교를 실천하고 있는 이민교 선교사.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수많은 사건과 사연을 안고 있다. 

이 선교사는 원래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던 사람이었다. 뿌리깊은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고아와 장애인에게 온 마음을 쏟던 그는 자타공인 교무(敎務)가 될 재목이었고, 원불교 정녀(貞女)인 누님의 권유로 고3때 소록도를 방문한 후 ‘원불교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런 그가 소록도 생활 7년 후 염불이 아닌 찬송과 방언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탐구를 위해 들어간 소록도에서 그는 기독교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죽음은 중학교 2학년 때 <사랑의 스잔나>라는 한 편의 영화로 시작된 물음이다. 종교심이 유난히도 강했던 부모님의 신앙 따라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장례식장을 많이도 따라다녔다. 울음과 통곡이 지속되던 장례식장을 다니며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저리도 슬퍼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스물 즈음에 죽음 이후의 삶을 찾기 위해 무당을 좇아 계룡산을 가고 한국의 민족종교인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를 찾아가고, 길거리의 행려자들과 살아 보고, 부산 당감동 화장터와 서울 벽제 화장터를 다녀 보기도 했다. 다양한 죽음 너머의 삶을 찾았던 고행의 여정으로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록도를 다닌 지 약 7년 만에 소록도 법당 안에서 목탁을 치다가 염불 대신 찬양으로 하나님의 신, 성령이 찾아왔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장례식에서 끊임없이 들었던 찬송가 가사가 주님의 성령으로 법당 안에서 목탁을 치고 있던 이 선교사를 습격한 것이다.

그는 “귀신들이 많다고 표현하는 법당 안에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셨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셨다”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죽음을 축제로 맞이했던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화장터에서 울려 퍼진 환송식! 그 기쁨의 찬송이 결국 하나님을 웃게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축구공을 통해 세상에 전한 복음

원불교 법복을 벗고 하나님 성령의 옷을 새롭게 입은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신, 자신을 불러 세우신 이유를 찾고자 그는 광야 훈련을 거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다.

그 후 GP선교회 선교사 약사였던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선교를 떠나게 된다. 당시 선교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선교비 마련을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한 아내에게 “선교비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원없이 선교 한 번 해보자”고 한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타슈켄트로 떠난 그는 그 곳의 아이들과 마주한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외치고 강제로 예배에 참석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해주고, 일상에서 그들의 친구로서, 가족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햇다.

그런 즈음에 그는 그 곳에서 농아들을 상대로 선교하며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릴 꺼리를 찾던 중, 그는 축구를 생각하게 된다. 본래 이 선교사는 고교 시절 테니스 선수였지만, 테니스는 다수의 인원이 함께 하기 어려운 경기라는 점이기에, 공 하나만 있으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축구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한 축구 경험을 토대로 농아축구팀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의 팀은 2000년 아시아 대회에서 3위를 하며, 아시아권의 주목을 받게 된다.

또한 그 지도력을 인정받은 이 선교사는 카자흐스탄으로 옮겨 농아축구팀 감독을 맡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전혀 상관이 없던 축구를 통해, 선교를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놀랍게도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자흐스탄의 10여년 감독생활이 지속될 즈음에 그는 북한 농아축구팀 감독으로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된다. 다른 나라로 아닌 북한에서의 제의였기에 사실 그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물었다.

“북한에 왜 가려고 하느냐? 북한에 가려는 이유가 뭐냐?” “북한에 왜 가려고 해? 일하려고? 아니면 사랑하려고? 일 때문에 가야만 하면 가지 말고 북한 장애인들을 사랑하려고 하면 가라!”

그 순간 그는 다시 깨달았다. 축구는 매개일 뿐, 그는 본디 하나님께서 이웃을 섬기고, 장애인을 사랑하라 보낸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그 어떤 고민이나 이유는 필요 없었다.

이민교 선교사는 지금도 하나님, 그분이 하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데 그것이 축구공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거침없이 달릴 것이다.

한편, 그는 최근 책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통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산 속에 살던 물고기에서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세상에 나와 놀라운 사랑을 전파하고 있는 이민교 선교사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차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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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살던 물고기를 바다로 보낸 하나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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