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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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호 목사
(한복협 부회장, 새로남교회 담임)



본고는 지난 10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가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서 연 4월 월례회에서 오정호목사가 발제한 원고 ‘기술집약적 사회에서 주도적 믿음을 회복하기’를 편집한 것이다.



오후예배에서 붙박이 저녁예배로 전환하라.

발제자는 지난 2011년 2월 본 한복협에서 <주일성수와 예배의 부흥을 주시옵소서>라는 주제로 모일 때 ‘주일저녁예배 회복을 중심으로’의 내용으로 발표한바 있다. 그때는 발제자가 속한 총회의 예배모범과 성경적 근거와, 교회사적 근거 그리고 주일저녁예배의 유익의 목회적 관점으로 다루었다.

이 시간은 지난번 발제에 이어 성도의 관점에서 주일저녁예배의 실제적 유익을 찾아보기를 원한다.

한사람의 신앙고백이 생활신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신앙의 의식화, 신앙의 인격화, 신앙의 생활화, 신앙의 공동체화, 신앙의 문화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처음 교회문턱을 넘은 성도가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외없이 자신을 예배자로, 봉사자로, 전도자로 인지하고 자기 정체성을 실생활로 옮겨놓는 영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가운데서는 신앙성숙에 영향을 끼치는 1:1의 관계, 구역이나 목장모임을 통한 소그룹관계, 주일 낮 예배를 통한 전체 성도들과의 교제와 예배자로서의 자기인식이 길러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의 신앙성숙과정에서 단절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처음 믿음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은 먼저 믿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신앙의 인격화와 생활화를 경험한다. 문제는 기성신자 가운데서 일주일에 한번 주일 낮 예배로 끝나는 성도의 비율이 점점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가운데 시간적으로 늦게 교회 생활하는 새로운 교우들은 전세대가 주일저녁 예배를 통하여 누리던 교회생활 즉 신앙생활의 심화를 경험하기가 매우 힘든 구조 속에 들어와 있다. 심지어 주일저녁예배가 오후로 옮겨지거나(각 지역교회의 여러 가지 목회적 사정이나, 지역 특성이 개입되어 있다) 아예 오전부터 드리는 몇 차례의 예배가 오후로 이어지면서 저녁예배를 자연스럽게 각 부별 예배로 포함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나저러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성도들에게 주일 저녁예배의 흡인력이 상실된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은 그 속성상 끝없는 편리주의를 추구한다. 당위성보다는 편의성을 앞세운다. 왜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오직 예배를 위하여 시간과 장소를 따로 구별하라고 요구하셨을까? 인간의 임의성에 맡기지 않고 주님께서 주도적으로 제도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펼쳐내셨을까?

<우리나라 일주일 TV시청 통계>가 보여주듯 TV나 스마트폰과 취미생활에 투자되는 시간은 불가침의 영역처럼 강력하게 상승되고 있지만, 예배는 언제든지 손대어 가감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현대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Ⅰ. 어떤 동기로 주일저녁예배를 드리는가?

주일저녁예배와 주일 낮 예배에 임하는 예배자로서의 동기는 결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단 주일저녁 예배자는 주일 낮 예배자들과는 다르게 예배자로서 뿐 아니라 온전한 주일성수자로서의 자기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성숙에 대한 열망, 공동체에 대한 이해, 시간활용에 대한 전략적 사고, 공동체를 세우고자하는 복된 마음이 있을 때 저녁예배자로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를 드리는 현장은 주님과의 만남의 현장, 성도의 교제의 현장, 예배자로서의 예배의 훈련(말씀, 기도, 찬양, 교제)에 대한 열린 공간으로 제공된다. 또한 바쁜 도시인의 쉼터로서의 기능도 감당할 수 있다. 또한 부모의 신앙이 자녀손들에게 세대계승되기 위해서는 사적인 공간인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공적인 공간인 예배당에서 역시 예배자로서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전수하여야 한다.

발제자가 섬기는 새로남교회에서는 특정한 광역도시에서 상징적인 예배시간을 제공함으로 지역민뿐 아니라 방문자, 예배에 대하여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의 기능을 감당하고 있다.



Ⅱ. 어떤 방법으로 드리는가?

1. 시간과 장소를 붙박이로 진행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예배실에서 오후 7:30분으로 고정하여 저녁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시간과 장소를 고정시키는 이유는 대내외적으로 주일저녁예배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 예배생활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이다.

2. 메시지를 전하는 강사는 본 교회 담임목사나 부교역자 그리고 외부에서 모셔오는 특별강사로 진행한다.

3. 교회의 전체흐름을 주도하는 중직자들은 주일 낮 예배처럼 존중하기를 원한다.

직분자들의 영적침체와 불순종 그리고 영계의 혼란은 개인예배생활의 침체와 혼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분자의 은혜성이 교회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논리적인 공동체성 함량을 뛰어넘는, 실생활의 공동체성을 경험한다.



Ⅲ. 주일저녁예배를 통한 어떤 열매가 있는가?

1. 생활신앙인으로 드려지는 은혜가 있다.

예배도 훈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훈련된 예배자가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영적인 선순환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사모하는 자의 결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2. 강단교류를 통한 은혜의 다양성을 체험한다.

발제자가 섬기는 교회는 장로교단에 속해 있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의 교인은 자기교파 중심으로 사고가 형성되기에 배타성이 강하다는 평판이 없지 않다. 여러 교단에 속한 훌륭한 강사를 모시면 은혜도 다양하게 체험할 뿐 아니라, 지역교회의 장벽과 교파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기에 주일저녁예배는 장로교회 교우들에게 큰 유익을 준다. 나를 열지 않고서는 타인의 마음을 열수 없다는 원리이다.

3. 세대통합예배를 드리게 된다.

발제자의 교회에는 대학부가 2부서, 청년부가 3부서가 있다. 우리 청년들은 우리교회의 미래이다. 그런데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는 교회는 실상 미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도 함께 드릴 수 있는 예배, 함께 공동체성을 경험할 수 있는 예배는 세대통합과 세대계승의 현장으로 쓰임 받는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현장에 어찌 기성세대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의 대학 청년들이 직장과 결혼을 따라 전국 어느 곳에 흩어져 산다 할지라도 바로 그곳에서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내며 또한 교회봉사자로서 쓰임받기를 기대하기에 대학 청년들의 주일저녁예배를 강권하고 있다.

4. 은사로 섬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주차, 찬양, 특별순서등 주일낮 예배 시간을 통하여 소화해 낼 수 없는 봉사를 저녁예배 시간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다. 발제자의 교회에서는 제자훈련에 들어오면 무조건 주일저녁예배 주차봉사로 일정기간을 섬겨야 한다. 주차 봉사를 경험한 성도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소 주차 봉사자들에 대한 시각에서 더욱 진일보한 시각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믿음의 성숙이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5. 교구 예배를 드린다.

분기별로 교구예배를 기획하여 드리기를 힘쓰고 있다. 교회 규모가 커져갈수록 오붓한 자기지역만의 시간이 필요함을 공감하여 각 홀에서 교구예배를 기획하여 드린다. 교구를 담당한 교역자가 설교자가 되고 그 교구에 속한 직분자들이 순서담당자가 된다. 찬양팀이나 찬양대는 오직 그 교구에 속해 있는 교우로서 구성된다. 교구 예배를 드린 교우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사와 의미와 재미를 이야기하였다. 물론 상호 비교를 통한 도전을 받아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야 되는 작업도 필요하였다.

6. 담임목사의 안목이 확장 심화되었다.

이 부분은 지역과 교파를 초월한 저명한 강사를 초청하여 믿음의 교제를 나눔으로 성도들의 성장뿐 아니라, 담임목사인 발제자도 많이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담임목사의 안목이 자기중심적인 안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주일저녁예배가 활성화 되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유익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7. 부부화목의 기회를 제공한다.

금이 가고 있는 가정이 많은 현실이다. 소문난 가정생활세미나 한두 번 참석한다고 하여 그 가정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세미나마다 특성이 있으니 동기유발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부부가 함께 계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예배는 부부간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줄 뿐 아니라, 저녁예배 참여하는 많은 가정들이 건강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화목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

8. 기독교 문화를 심화확산한다.

발제자의 교회는 국제교회(영어, 중국어, 일어)와 농아교회가 있다. 또한 기독학교를 운영한다. 도저히 주일 낮 예배로 소화시킬 수 없는 만남과 프로그램을 저녁 예배시에 실행하여 상호 영적유익을 도모할 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제교회 주도로 예배를 기획하여 드리는 것과 농아교회와 기독교학교 현장을 공개하는 예배시간을 가짐으로 장애인이나 다문화에 대한 시각을 성경적으로 확립할 수 있다. 특히 영상과 음악을 통한 소개와 새로운 경험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기성세대에도 관심과 기대를 선물한다.

9. 부교역자를 세우고 격려한다.

한 지역교회의 책무는 교우들을 각성시켜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로 세우는데 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목회적인 안목과 능력 그리고 균형 잡힌 인격을 가진 부교역자들을 배출하여 한국교회에 기여하는 일 또한 소중한 일이다. 규모 있는 교회일수록 주일저녁예배는 부교역자들에게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자신을 다듬고 성도들과의 관계를 증진하는 일에 매우 유익한 기회를 제공한다.

앞에 제시한 몇 가지 외에도 복합적으로 누리는 은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성도가 예배자로서 평생을 살아갈 때에 은혜로우신 주님과 말씀에 대한 갈망,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열린 마음, 민족복음화에 대한 책임의식, 지구촌시대의 선교에 대한 열린 의식이 주일 낮 예배시간과 소그룹을 통하여서만 경험된다고 제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또한 이성적으로 매우 조심스러운 주제가 된다. 어쨌든 발제자의 교회는 발제자가 교회부임이후부터 주일저녁예배를 마음에 둔 바 받은 은혜가 남다르기에, 온전한 주일성수 속에는 주일저녁예배에 대한 헌신도 자리 잡고 있다고 믿는다.



나가는 말

어떤 이들은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주일저녁예배까지 요구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짐을 더 지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발제자의 생각은 다르다. 노동집약적으로 살았던 농경시대는 그 나름대로 피곤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기술 집약적인 시대에 사는 우리 역시 수많은 유용한 기계발명의 결과로 시간활용의 폭이 넓어졌다할지라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국민 스트레스가 가중되었다는 보고가 많다. 그렇다면 언제 한국교회는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예배중심의 삶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쓸 시간 다 쓰고, 쉴 시간 다 쉬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예배자로서의 체면만 살리겠다는 생각자체가 문제의 출발이라 여겨진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예배는 참된 예배로서 품격을 상실한 것이다. 

어떤 이는 교회안에서의 예배자이기 보다, 일상의 예배자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일리 있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일성수의 훈련이 선행되지 않고 일상의 예배자로 자신을 인식하고 삶을 살아내는 한국교회 성도가 얼마나 있을 것인가?

논산에 자리 잡고 있는 육군훈련소는 <정병육성>의 요람이라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발제자도 육군훈련소 출신이다. 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이 튼실하지 않으면 그 병사가 자대에 배치되어서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율법적이고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복음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주일저녁예배를 포함한 주일성수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주일성수는 한국교회의 건강을 위하여 허락하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아버지의 특별한 선물이라 확신한다. 특별한 선물을 가치 없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선물은 물론 선물한 이에게까지 무례하게 행하는 것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한국교회가 온전히 예배하는 교회로 주님께 발견되어 쓰임받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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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4월 월례회 ‘온전한 주일성수 신앙의 회복을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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