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어느 시인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당시 그 이름난 시인이 한국의 4월까지를 염두에 두고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의 결과는 바로 적중된 표현인 것 같다. 적어도 지난해(2014)부터는 더욱더 그러하다는 판단이 앞서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인 1960년 4월에 이른바 4·19혁명이 일어나 많은 젊은이(특히 대학생)들이 산화했었다. 정치 일선의 실권자들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으며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고작 1년 만에 군부 세력에 의해 소위(所謂)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4·19의 의의는 역사 속에 점차 묻혀져 갔다. 그러나 T.S.엘리엇이 말한바 “4월은 잔인한 달”이란 말속에는 다분히 역설적(逆說的)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흔든다.”란 유명한 시구에서 볼 때 그 복잡 미묘한 뜻이 독자들에게 뚜렷이 전달된다. 그(시인)에 의하면 4월이 단순히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시들어버린 뿌리에서 생명체를 일으켜 세울 봄비를 내리는 계절이라면 4월은 ‘잔인’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의미만을 지닌 계절은 결코 아니란 말이다.
4·19 의거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시 대단한 의의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정치적으로 이미 죽어버린 땅(死地, 황무지)에서 라일락을 키워보려고 젊은이들이 일으킨 일대 거사였고 이로 인해 이 땅에 일시적으로나마 시들어버린 뿌리에서 무언가 생명이 꿈틀거리게 봄비를 내려 준 의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무수한 젊은이들이 죽고 또 다쳤다면 이런 동력을 제공해 준 4월이 잔인한 달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그런데 지난해(甲午年)에 일어난 4·16 세월호침몰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 4월이란 계절을 우리나라에서 더욱 잔인한 달로 인식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판단된다. 예부터 무슨 세계7대불가사의란 표현이 자주 사용돼 왔는데, 이 ‘세계’란 말 대신 적어도 ‘한국’이란 말로 바꾸어 사용할만한 거리는 될 수 있는 게 이 사건이 아닌가 한다. 어떻든 세월호 사건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것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하고 야릇하다.”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사건이었기에 정상적인 인간의 머리로는 미루어 짐작할 수도 없이 이상하고 야릇한 사건이었다는 말인가. 이 ‘불가사의한 일’의 실체를 풀어야 할 책무가 ‘흐르는 세월의 배’ 위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의 어깨에 지워져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얼마 전에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재가를 미루고 즉각 재협의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그 성명의 내용 가운데 그 시행령이 “사실상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공무원이 특조위의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는 대문이 나오는데,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특조위의 이 시행령이 불가사의해도 보통 불가사의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 아닌가.
1961년 5월16일에 소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후에 이 세력은 피의자 8명 처형의 이른바 인혁당 재판이란 극도의 잔인한 사건까지 날조해 가면서 3선 개헌에 득의하고(?) 장기집권을 획책했지만 끝내 역사의 엄중한 심판에 의해 그 세력이 소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이의 “나는 잔당이 아니고 본당이다.”라고 큰소리쳤던 것처럼 요즘 그것의 잔당 아닌 본당 세력이 재집권에 진입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불운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4월은 잔인한 달에서 이제 5월도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성싶은 일이 이어져 가는 편이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0년 5월18일에 이른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민중항쟁은 그 하루 전 날 있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잔인한 학살 만행 때문에 촉발된 것이어서, 그 책임을 통감한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이미 보상 절차까지 거의 끝나가는 현 시점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해 북한 공작원 개입 운운의 망발이 발해지고 있음은 매우 유감이라고 하겠다.
4·16 세월호 사건, 4·19 의거 사건, 5·16 군사 쿠데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등은 한국의 잔인한 집권 세력들과 어떻게든 관련된 사건들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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