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이 글은 이은선 박사(안양대)가 지난 3월 28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제32차 및 한국교회사학회 제125차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선교사역” 가운데 “언더우드의 한국종교 이해와 신명 이해” 중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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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하나님 개념은 지고신으로서 하늘의 주라는
의미의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속성과 권능과 일치




언더우드의 신명 논쟁
국내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처음에 이수정이 1885년에 일본에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서 언해를 개정하면서 이 성경에서 사용된 “신”의 명칭에 대해 비판이 시작되었다.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신(神)”이란 명칭이 귀신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1887년에 개정된 마가의 전한 복음서 언해에서는 ‘신’대신 ‘상뎨’를 채택하고 이후 국내성경에서는 ‘신’이란 명칭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명에서는 로스역을 개정할 때에는 하나님을 어원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하ㄴ�님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위원회역에서 압도적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선교사가 순수하게 번역한 성서인 아펜젤러의 1892년의 마태복음에서는 신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명으로 ‘참신’과 ‘하ㄴ�님’을 병기함으로써, 기존의 이수정역과 로스역 전통에 하나의 타협점을 제시한 듯한 인상을 준다.
게일은 1892년에 사도행전을 간행하는데 신의 명칭으로 ‘상뎨님’을 채용하였고, 이 명칭은 1893년에 펜윅이 번역한 약한의 기록한대로 복음에만 등장하고 이후 한글성경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와같이 초기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신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언더우드는 신명과 관련한 용어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1893년 찬양가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선호하던 ‘하ㄴ�님’뿐만 아니라 ‘상뎨’를 거부하고 ‘여호와’와 ‘참신’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언더우드는 기독교의 God이란 명칭이 ‘이름’(name)이 아니라 ‘용어’(term)이므로 한 문화권의 신들 이름 가운데 하나가 사용될 경우 거기에는 다른 신들이 함께 연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반 신들을 배제하는 포괄적인 용어를 선택해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 ‘여호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은 중국에서 신명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윌리암 분(William J. Boone)을 중심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했던 주장이다.
언더우드는 “한국인들이 하ㄴ�님이란 말을 이해하고 이미 그 하ㄴ�님만을 섬겨왔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하ㄴ�님이 한 분뿐이고 유일하신 신이라고 가르치고 그의 속성을 말해 주면 된다”는 손쉬운 해결방안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1893년부터 참신, 여호와, 상뎨, 샹쥬, 하ㄴ�님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며 용어 논쟁을 일으켰다.
언더우드가 “하ㄴ�님”이란 용어를 반대한 이유는 이 용어가 유일신의 의미가 아니라 지고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혼합주의 내지는 다신교를 허용하는 인상을 줄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10년이 지난 1903년 번역자회에서 하ㄴ�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언더우드는 다른 선교사들의 연구 결과들을 수용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우리나라의 고전문헌들을 연구하여 고구려 시대에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겨 제사한 사실을 알게 되어 하나님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 헐버트와 게일의 연구 결과의 수용
언더우드가 하나님의 유일신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준 것은 헐버트와 게일의 하ㄴ�님에 대한 논의이다. 게일은 1900년을 전후하여 하ㄴ�님이란 용어가 유일신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헐버트는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단군신화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용어 논쟁에서 세 가지 의미에 대한 이해의 논쟁이었다. 하나님이 하늘의 주라는 지고성(heavenliness), 한 분(One), 위대한 분(Greatness)의 세 가지 의미였다. 게일은 1900년에 하나님을 지고신으로서 ‘하늘의 주(Heavenly Lord)’라는 의미에 유일신으로서 ‘하나’+‘님’으로 이해하려는 의미를 덧붙였다. 그는 이 때 하나님을 소개하는 글에 주씨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씨가 말했다.  “우리의 신은 크신 한 분(the Great One)으로 ‘하ㄴ�님’으로 불리는데, ‘하ㄴ�’는 일(一)을 의미하고 ‘님’은 주, 주인. 임금을 뜻한다. 한 크신 창조주가 ‘하ㄴ�님’(Hananim)이다. 우리는 그분을 우주(천지)의 건설과 연결시키며 그래서 그분을 고대의 창조주(조화옹)이라고도 부른다.”
게일은 하ㄴ�님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유일하신 창조주의 의미가 강조되는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이다.
헐버트는 1895년부터 중국과 구별되는 우리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 단군을 역사적 인물로서 우리 민족의 시조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게일은 기자의 우리 민족에 대한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단군을 신화로 보았으나, 그 시대 단군의 종교적인 숭배의 정치적인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상호 다른 견해를 가지고 1900년에 충돌하였는데 이들의 견해를 존스(Jones)가 종합하였다. 그는 단군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헐버트의 견해를 수용하고 기자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는 게일의 견해도 받아들이면서 샤머니즘이 한국적인 유산들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하였다.
헐버트와 게일은 1901년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단군에 대한 이해를 상호접근시켰다. 헐버트는 1901년에서 Korean Reviews지에 한국사를 연재하면서 단군신화를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환인을 창조주, 환웅을 성령, 단군을 성육신한 주로 기술하였다. 그는 단군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에 의해 잉태된 자, 완벽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로 묘사하였다. 헐버트의 단군신화의 삼위일체 모티브로의 해석은 선교사들 사이에서 단군연구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반면에 게일은 그리스도신문의 기고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역사적인 단군과 그의 신적인 기원을 반박하였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헐버트는 단군신화가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고, 단군 신화의 환인이 하늘에 있는 아버지로서 창조주요, 한국인들에게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이 용어 논쟁에서 탐구되었다.
1900년 전후에 헐버트와 게일은 하나님에 대해 유일하신 창조주라는 개념을 수용하였다. 차이는 헐버트는 단군 신화의 환인을 창조주라고 해석하였고, 게일은 하나님의 주요한 어원을 하나 혹은 연합(unity)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1903년에 서울에서 열린 감리회 19차 연회에서 벙커와 존스는 성경에서 천주가 삭제되고 하나님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여 통과되었고, 1904년의 신약 시험본은 하나님의 명칭으로만 인쇄되었고, 1906년 공인본에서 출판되었다.
이후에 헐버트는 1906년에 아브라함 시대에 단군이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하늘을 감동시키는 제단을 쌓았고, 그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순수한 종교적인 개념은 외래적인 의식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원시적인 자연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이 하나님이란 단어는 ‘하늘’과 ‘님’의 합성어로서 한자어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은 이 하나님을 우주의 최고 주재자로 간주한다. 그는 자연계에 횡행하는 여러 영들이나 귀신들의 무리로부터 떨어져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인들은 엄격한 유일신론자들(monotheists)이며, 하나님에 부여된 속성이나 권능은 외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가르칠 때 거의 보편적으로 이 용어를 수용할 정도로 여호와의 속성과 권능과 일치한다. 중국에서는 천주라는 이름을 가진 우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형상을 만들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언더우드는 이러한 헐버트와 게일의 연구를 자신의 동아시아 종교에 대한 강연에서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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