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본 원고는 지난 8월 14일 서울 도렴동 종교교회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북한선교 연합 컨퍼런스’ 중 마요한 회장이 발제한 ‘북한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 탈북민’의 주요 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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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형교회는 풍부한 인프라 통해 사역의 재생산 이루고
탈북민교회 자립 통해 북한선교와 통일에 주도적 역할 해야



교회의 탈북민 목회
탈북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역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역은 그들을 위한 교회의 목양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땅에 탈북민들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탈북민들을 보내신 것은 한국교회를 통해서 북한의 회복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그 말은 곧 단지 배부르고 자유롭게 살라고 이 땅에 온 탈북민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며 또한 두고 온 고향과 그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북한의 회복의 주체인 한국교회도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품고 섬길 때 복음통일의 사명을 더 잘 준비할 수 있음을 말한다. 해외에 있는 탈북자들을 보호하고 구출하는 것도, 이 땅에 들어 온 탈북민들에게 정착지원과 교육지원을 하는 것도 결국은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더 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교회에서의 탈북민 목회는 모든 탈북민 사역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탈북민 목회는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크게는 중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에서의 목회로 나눌 수 있다.

1) 중대형 교회에서의 탈북민 목회
중대형 교회에서의 탈북민 목회는 다시 탈북민 중심의 목회와 남과 북이 함께하는 형태의 통일목회로 나눌 수 있다. 탈북민 중심의 목회나 통일목회는 둘 다 공동체 중심으로 모이는데 모이는 목적에 따라 예배공동체와 사역공동체로 분류할 수 있다. 예배공동체는 교회 안에서 독립적으로 예배를 드릴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세례나 성찬식까지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예배중심의 모임이다. 반면 사역공동체는 교회 전체 예배를 드린 후에 따로 모임을 가지는 형태인데 예배중심보다는 친교나 사역중심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① 탈북민 중심의 공동체
탈북민 중심의 예배공동체나 사역공동체는 말 그대로 탈북민 성도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그러다보니 그 안에서의 예배나 사역 등 모든 것이 대체로 탈북민들에게 맞춰져 있다. 물론 이런 공동체에도 남한 성도들이 참여하는데 봉사자, 혹은 교사로 참여한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는 대체로 북한선교 사역의 일환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간혹 긍휼사역과 같은 특수사역의 범주에 속하여 진행되기도 한다. 탈북민사역을 긍휼사역 범주에 넣는 것은 탈북민들이 북한선교의 주체가 아닌 사회적인 약자라는 시각으로 보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탈북민사역이 북한선교사역 범주에서 진행되든 아니면 특수사역 범주에서 진행되든 간에 탈북민들의 특성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관계없이 기존에 교회가 가지고 있는 틀에 집어넣고 사역을 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한국교회의 탈북민 사역은 남한교인들이 교사가 되어 탈북민들을 가르치는 형식을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탈북민들은 항상 ‘을’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물론 교회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구도를 만든 것이 아닌 일반적으로 새신자들이 오면 양육하는 구조를 탈북민들에게도 적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양육을 받는 대상들이 같은 남한 지체들일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그들이 탈북민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북한 지체들에 대한 신앙적, 지식적, 문화적, 정신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평등한 지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없게 하고 따라서 서로를 향해 진정한 마음의 문을 열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역 방법이 남한 교인들에게는 북한선교를 위해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줄 수 있으나 역으로 탈북민들에게는 교회에서도 동등한 지체가 아닌 사역 ‘대상’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그들의 온전한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게 한다. 이렇듯 한국교회의 전통에 집어넣고 진행하는 탈북민 목회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② 통일목회 공동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새롭게 시작된 시도가 바로 남과 북의 성도들이 함께하는 통일목회 형태의 탈북민 사역이었다. 이 목회형태는 언뜻 보면 기존의 목회형태와 비슷해 보인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 안에도 탈북민 성도들과 남한성도들이 함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와 역할이 다르다. 기존의 탈북민 공동체는 남한성도들이 리더의 위치에서 탈북민 성도들을 가르치고 리드했다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는 어느 그룹이 다른 그룹을 가르치고 리드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지체로 보고 함께 배우고 섬기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남한 지체들뿐만 아닌 탈북민들도 리더로 함께 섬긴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남과 북의 성도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섞여서 말씀을 나눌 뿐만 아니라 또한 서로가 서로를 섬기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이러한 예배공동체가 더 건강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교회 안에서의 이러한 목회 형식에도 한계가 있다. 공동체 안에서는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준비해 가지만 공동체 밖 교회 전체에서 이 사역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여전히 탈북민 예배요, 특수사역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회 담임목회자의 생각이나 비전에 따라 사역의 방향들이 이리저리 바뀔 때가 많다. 물론 교회 담임목회자가 북한선교와 탈북민 사역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교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교회의 사역방향에 따라 관심을 받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여전히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특수한 사역으로 남는다.

2) 소형교회 형태의 탈북민 목회
① 탈북민교회
탈북민 목회 형태에는 중대형교회 중심의 목회만이 아닌 작은 교회중심의 탈북민 목회사역들도 있다. 작은 교회의 탈북민 목회는 처음 탈북민 목회자 또는 북한선교의 사명을 가진 남한 출신의 목회자가 일반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민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교회들은 한국교계에 보통 탈북민 교회로 알려졌고 대부분 탈북민들로 구성되었다. 한국에 입국하여 일반 한국교회에 갔다가 적응하지 못한 탈북민 성도들 가운데는 일반 한국교회는 남한 사람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저들은 계속 손님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고 때문에 자기들만의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탈북민교회가 이젠 10년이 넘었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30여개의 교회로 성장하였다.
탈북민 교회들은 여러 가지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우선은 탈북민들은 모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워낙 탈북민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힘들어하여 교인들의 숫자도 별로 없는데다가 보통 탈북민들의 재정적인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헌금도 많지 않고 거기에 믿음이 없어 헌금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탈북민 교회들은 거의 외부의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또한 탈북민 성도들이 대부분 제대로 된 신앙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를 함께 세워갈 리더십이 항상 부족하고 그것으로 교회 영적성장에 중요한 새신자 양육이라든지 돌봄과 같은 사역들을 이루는데도 계속적인 어려움들이 있다. 결국 탈북민 교회들의 어려움은 또다른 어려움을 낳는다. 한국교회가 탈북민 교회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② 통일을 살아가는 교회
몇 년 전부터 그동안 진행되어 온 탈북민사역들을 통해 얻은 경험들에 기초하여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통일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미리 통일을 연습하고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통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통일이라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 사람의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한국교회가 북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그동안 탈북민들을 섬기면서 깨달은 부분이었다. 남과 북이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가 없이도 북한의 문이 열릴 때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남한교회는 북한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몰랐고 또한 준비가 없으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탈북민 사역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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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국교회 국내외 탈북민 사역의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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