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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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어서부터 고독을 즐기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생각건데 여섯 살 때 아버지와 네명의 누나들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어릴 때 성격은 매우 쾌활했고 누나들을 웃기고 울리기도 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 나면서 고독을 즐기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으며 밤길을 걸으며 명상하는 것을 취미처럼 즐기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혼자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철학적 종교적 명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같은 상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나는 한 때 허무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뜬구름이요, 스처가는 바람이며 흘러가는 강물이요 일장춘몽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키’없는 배처럼 물결따라 어디론가 떠밀려 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만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이 허무주의를 조금씩 극복할 수가 있었다. 성경에서 키워드(Key Word)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혼자 밤길을 걷는 취미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1959 년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 때 나는 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에서 개척교회 전도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때는 6월 중순쯤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들녘에는 모심기가 한참이었다. 나는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에 있는 고향집에 가서 다음 날 모심기를 돕기 위해 오후 늦게 청암에서 출발했다.
물새들도 집을 찾아 산속으로 날아 들고 농부들도 일손을 놓고 마을로 들어오는 저녁 때에 나 혼자 집을 나서고 있었다. 밤에 황토재를 넘으면서 옛 추억을 되새기며 깊은 명상에 빠져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담력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대낮에도 혼자 이 험한 재를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야밤에  황토재를 넘는다는 것은 보통 심장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유유히 흐르는 청암강을 따라  8Km 거리의 비포장 자갈길을 한시간 반쯤 걸어서 횡천면 횡천리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마을에는 희미한 초롱불이 여기저기에 켜져 있었다. 황토재가 시작되는 여의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짙게 깔려 있었다.
황토재가 시작되는 길목에 이르자 웬 젊은 여성이 혼자 서성거리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재밑에 혼자 서 있는 여성을 보는 순간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연을 물어 보았다. 그는 이 재를 넘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고 하면서 같이 동행을 하자고 했다. 젊은 여성과 함께 그것도 야밤에 험준한 재를 넘는다는 것은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여성과 함께 재를 넘기로 했다.
나는 먼저 나의 신분을 밝히고 주소지를 알려 주었다. 그러자 여자분 역시 친정집이 북천면 00리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면 내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는 점에서 서로가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황토재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그 곳에는 옛날 한 비단장수가 재를 넘다 강도를 만나 비단봇짐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의 무덤이 있다. 우리가 이 무덤곁을 지날 무렵 나를 뒤따라 오던 여자분이 무섭다며 나에게 바싹 다가와 나의 팔을 붙들었다. 이 순간 나는 귀신보다 여자가 더 무서웠다. 제우스가 남자를 벌 주기 위해 여자를 만들었다는 옛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러나 무섭다며 다가서는 여자를 밀쳐 버릴 수도 없는 터였다.
그리고 다음 코스는 황토재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그 때 길가 가까운 덤불속에서 노루가 왝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치자 이에 놀란 여자분은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고 나는 부축했다. 이런 위험하고 아슬한 순간을 반복하면서 황토재의 정상에 이르렀다. 긴호흡을 내 쉬며 안도감을 되찾았다. 밤은 더욱 깊어 지고 있었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왔다. 부엉이가 울어댄다. 짝을 찾는 소리인지 고독을 달래는 노래인지 알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틀림 없다. 하늘 가까이에서 반달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헤어져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황토재가 끝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이 여성은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머뭇거리더니 뜻밖의 고백을 했다. 자기는 평소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쉽게 동행을 하겠다고 나서지를 못했을 것이라 했다.
나는 이 여성의 말을 듣는 순간 오늘 밤 내가 큰 시험을 치루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의 담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밤중에 황토재를 넘어 보기로 한 것인데 뜻밖에 인격시험을 치룬 것이다.
인격시험이란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자기 양심에 따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킬 수 있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지력(知力)과 학력(學歷)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인격점수가 낙제점이면 쓸모가 없어진다.
나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산책할 때가 많다. 인생은 캄캄한 밤에 홀로 험준한 재를 넘어야 하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그리고 인생의 가는 길은 언제나 밝은 가로등이 내려 비취는 아스팔트길만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별빛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산악재를 넘을 때 때로는 좋은 길동무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포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갑자기 악마로 돌변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고 있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동반자를 만나 칠흑같은 밤중에 산악재를 함께 무사히 넘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먼 길을 혼자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예나 지금이나 그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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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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