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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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밤에 그를 찾아온 유대의 종교 지도자요, 정치 지도지이며,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알려진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가르침을 구할 때, “누구든지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3)고 말씀하셨다. 개역성경에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번역하고 있다. 헬라어 게네데 아노덴”(γεννηθῆ ἄνωθεν)이라는 말을 여러 영역본에서 다시 낳는다”(born again)로 번역한다. 아마도 한글 역본도 이를 따라서 거듭나다로 번역한 것 같다. 니고데모도 그렇게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께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자기 어머니 뱃속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다시 낳는다고 할 때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니고모와 같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낳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게네데 아노덴”(γεννηθῆ ἄνωθεν)이라는 말은 위로 낳다라고 번역해야 옳다. 육신적으로 다시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새로 낳는다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다시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3:5)라고 말씀하신다(5).
여기서 성령이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은 데 도대체 물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인가? 어떤 사람들은 물을 성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스겔 47장에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나,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7:37) 고 말씀하시며,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것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다.” (38)라고 말씀하셨는 데 이것은 그분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39) 해석을 해주셨기 때문에 물은 보통 성령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것이 옳은 해석이라면 물과 성령이라는 밀씀이 예수께서 성령과 성령이라고 이중으로 말씀하신 것 같이 되는 데, 예수께서 이것을 이중 의미로 말씀하셨을 것 같지는 않다.
성경에는 물을 성령으로 이해하는 부분도 많지만 말씀으로 언급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디도서 3:5에는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했다. 여기서 거듭남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게네데 아노덴”(γεννηθῆ ἄνωθεν) 이라는 말과는 다른 파링게네시아”(παλιγγενσα)라는 말을 쓰고 있다. 한글 개역이나 개역 개정판에서는 중생,” 표준새번역과 바른성경에서는 거듭남,” 번역하고 있는 데 영역본에서는 “regeneration”(ESV, KJV, NASB), “new birth”(NET), 혹은 “rebirth”(NIV)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어휘는 의미상 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바울의 말이 우리의 구원이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거듭남은 씻음의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겔서에서는 죄를 짓고 이방에 끌려갔다가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정결한 물”(םירוחט םימ)을 뿌려서 깨끗하게 하고,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36:25-26). 물로 씻음과 거듭남의 관계를 암시하는 말씀이다. 또한 에스겔 47장에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흘러나온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치유와 소생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데 여기서도 물의 역할이 생명을 소생시키는 일임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15:3)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깨끗하게 하는 물이 예수님 자신이 지끔까지 가르치신 말씀임을 밝히신 것이다. 바울도 에베소 5:26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셨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물로 씻는다는 말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한다말이 병행되어 사용되고 있다. 물과 말씀이 다같이 씻음의 역할을 하며, 서로 교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예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은 바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씀과 성령은 마치 동전의 앞 뒤와 같아서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전통적인 개혁주의자들은 말씀과 성령 사이의 비분리성을 강조하고 가르쳐왔다.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오웬은 성령을 말씀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한 사람은 마치 성경을 불태우는 사람과 같다”(W.H.Goold, The Work of John Owen, vol 3, 192)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로버트 레이몬드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분리하거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령으로부터 분리해서도 안된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한, 말씀과 함께 한 사역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령에 의하여, 성령과 함께 일하신다”(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fo the Christian Faith, 766) 라고 주장했다. 성령은 우리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분이 아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과 같이 성령은 그의 뜻대로 일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우리의 힘으로 부릴 수 없다. 그러나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전하면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하면 성령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여, 내 안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되는 것이고, 교회에 말씀이 충만하면 성령의 역사가 교회에 충만하고 부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쳐보면 알 수 있다. 또한 20세기 초 한국의 대부흥의 역사는 말씀 공부하는 사경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그동안 성령에만 너무 치우친 관심을 가져온 것 같다. 말씀 이외의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갖고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교회가 부흥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제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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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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