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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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계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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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들은 감사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추수감사절은 일년 중 땀흘려 지은 농사에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여 한 해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을 마련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일이다. 오늘 날 농사를 짓지 않는 성도들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셔서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한 해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우리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시고,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를 더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시편 136편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시기 때문이다”(1)라고 시작하여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26)라고 맺고 있다. 처음절과 끝절이 같이 시작하여 같이 끝나고, 매 절마다 “... 하신 분(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라는 후렴 구로 끝나고 있는 데 여기에는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사해야 할 제목, 혹은 이유를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감사해야 할 점은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דסה, ḥeseḏ) 라는 말은 우리 개역이나 개역개정판에서는 인자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는 원래 이 어휘가 담고 있는 뜻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 말이다. 헤세드“(ḥeseḏ)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한번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배신할지라도 변함없이 그리고 한량없이 그 언약을 지키기시고 사랑하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어휘는 항상 언약적 맥락에서 쓰여지는 말이다. 어떤이는 헤세드“(ḥeseḏ)라는 말은 steadfast love”(변함없이, 꾸준한 사랑)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covenantal love” (언약적 사랑)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과 달라서 우리의 행함대로 갚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그리고 끝까지 한량없이 그의 백성을 돌보시고, 그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점에서 그 하나님을 헤세드“(˙esed)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하다는 말은 전혀 언약적 의미가 없을뿐더러 이방종교의 색채가 강한 어휘라서, 차라리 인애라는 말이 비록 언약적 의미는 내포된 말이 아니지만 좀 더 부드럽고 이방 종교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함께하시며, 새언약을 제정하셨다. 성경은 이때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다. (13:1). 가룟 유다가 그의 떡과 포도주를 받아 먹고 나가면 바로 배신할 줄 아셨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살과 피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에게도 나누어 주셨다. 그게 바로 헤세드“(ḥeseḏ)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옛 사람, 어부가 되어버린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떡과 물고기를 구워 주시고, 그에게 그의 양떼들을 먹이라고 목자의 직분을 위임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헤세드“(ḥeseḏ), 인애요 사랑이다.
이 시편의 저자는 여호와께 감사는 제목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의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네게 하신 하나님, 홍해를 건너 시혼과 옥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곧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육체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감사조건 가운데 다른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감사하는 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서 1:21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드리지도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의 도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추수감사도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주셔서 곡식을 얻게 하시고, 나에게 일자리를 주셔서 돈을 벌어 양식을 사먹고 살게 하셨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모든 부요함을 감당할 수 없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인애를 베풓신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인애만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ח될 일도 미리 감사해야 한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감사한 것 같다. 그는 모압과 압몬 자손들이 마온 자손들과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할 때에 레위 자손들을 합창대원으로 세워 공격 편대를 짜고, 적들을 향하여 나아가며,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대하 20:21)라고 노래하며 나아갔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미사일을 쏘아대고, 스텔스 기능을 갖춘 무인 비행체를 띄어 전쟁을 하는 시대에 군종 병과 군악대를 앞세워 군사분계선을 넘어 진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일은 지휘관은 물론 병사들도 다 미쳐서 우리 다 죽자 하는 각오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기상천외의 미치광이 짓이다. 그러나 여호사밧과 그의 군대는 전투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 데, 마치 승리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인애를 감사하며 나아갔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싸시고, 승리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를 더하시는 분이시다. 매사에 감사가 마르지 않는 사람은 매사에 하나님을 그의 삶의 주관자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의식하고 믿는 자이다. 그가 가진 모든 재물과 영광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고백하고 영광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감사가 없는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우리 기독교 신자라고 할 수 없다. 여호사밧과 그의 찬양대원들은 여호와께 감사하여라는 사역형 명령어(ודוה)를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여라“(Give thanks to the Lord)고 번역하지만 문자적인 번역이라면 감사하게 하라는 표현이 더 옳을 수 있다. 이 말은 감사하는 것을 가르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어린 아아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꼭 하도록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도 여호와께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베푸신다. 그의 백성된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한다. 여호와사밧과 그의 백성들처럼 전장에 죽으러 나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애를 감사하는 것이 신앙이다. 강아지나 짐승들도 감사할 줄 안다.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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