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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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응봉산은 초행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은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으로 분류된 산들도 그에 못지않은 데가 있는 것 같다.
응봉산은 울진군의 군립공원이라지만 덕구온천장 뒤로 오르는 능선에 보기만 해도 상쾌해지는 소나무가 빽빽하고, 원탕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면서 온천수로 발을 씻고 계곡에 놓여있는 여러 나라의 다리들을 건너게 된다.
솔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솔밭에 들어섰다. 검푸른 머리칼에 늘씬한 몸체의 붉은 빛이 나는 솔밭 사이를 걷는다. 마치 제왕이 되어 미녀군단을 사열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며칠 전 동해의 투타산과 청옥산을 오르다 무릉계곡을 보고 눈이 마냥 즐거웠을 때와 다른 느낌이다. 7부 능선부터 펼쳐지는 관목들도 소나무들 사이로 오색의 수를 놓고 있어 늦가을 정취가 한결 조화롭다.
동해 바다가 훤하게 바라보이는 응봉산 998.5m라는 표지석을 확인하고, 온천수가 솟는다는 원탕의 계곡으로 내려가려는데 발걸음보다 마음이 앞선다.
등반을 하다 보면 그 지방의 형편을 가늠하게 된다. 요즘 각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의 산으로 등산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어 외지인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응봉산군립공원은 질 좋은 소나무에 송이버섯이 나고 온천수와 계곡에는 세계의 유명한 다리들까지 있어 자연의 혜택에 가미된 걸작이다.
내게는 울진에 대한 남다른 추억이 있다. 홍천에서 군복무를 하던 1968년 1.21사태로 전국이 발칵 뒤집혔고 그 해 늦가을 120명의 무장공비가 울진으로 침투했다. 내륙으로 잠입한 놈들을 소탕하느라 나는 5분대기 전투소대장으로 밤낮없이 산에서 지내야 했다. 완전 소탕이 되기까지 2개월여 동안 험한 산들을 수색하고 다니느라 부산에서 갓 결혼식을 하고 올라온 아내는 혼자서 지내야 했다.
능선이 끝나고 계곡 쪽으로 상당한 규모의 철재교량이 보인다. 제13번째 교량 영국의 ‘포스교’ (Forth Railway Brldge 1890)라고 적혀있다. 여기서부터 세계 10여 개 국이 독특하게 디자인한 다리들을 구경하면서 건너게 된다. 전국에 있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의 규모와 시설들을 대강 짐작하게 되는데 응봉산은 특별한 것 같다. 협착한 산골짜기에 많은 다리를 세우게 된 동기가 궁금해진다.
지자체들마다 선호하는 케이블카도 아닌 철교를 왜 세우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원탕에 도착했다. 이곳으로부터 4킬로에 걸쳐 있는 12개의 다리를 역방향으로 건너볼 참이다. 그 첫 번째는 12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중국 최대 협곡의 ‘장제이교’(Jiangjiehe Bridge 1995)다. 계곡에서 제일 높고 전망 좋은 곳에 근위병처럼 키 큰 소나무가 버티고 서있는 ‘취향교’를 건넜다. 고종황제가 1873년 명성황후를 위해 경복궁 향원정에 세웠고 황제와 황후가 즐겁게 건너다녔다는 목재다리다. 취향교는 응봉산 계곡에 8번째로 세워진 교량이다. 국운이 쇠하여 황후를 비명에 잃었던 고종을 위로하고, 대한민국을 탄생케 한 대한제국의 취향교가 대영제국의 포스교보다 17년 앞섰다는 것을 돋보이려는 것 같다. 더불어 주변의 다리들은 이제는 우리의 국력이 그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매의 형상이라는 응봉산의 정기와 울진의 힘이 계곡에 집결된 것 같다. 먼 바다 로 비상하려는 것 같고 결전을 벌이려는 미래지향적인 표상이기도 한 다리를 다 건넜다. 이곳에 세워진 전체 교량 중에 내가 현지의 실재 다리를 건너본 곳은 세 곳이다. 첫 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 1937년)와 4번째 교량으로 세워진 시드니 ‘하버교’(Harbor Bridge 1932년), 그리고 2번째 교량으로 1995년 한강에 세워진 1,320m 길이의 ‘서강대교’이다.
응봉산 계곡에서 11번째 교량 일본 사이타마현에 있는 ‘도모에가교’, 10번째 교량 잉글랜드 맨체스터주의 ‘트리니티교’(Trinity Foot Bridge), 7번째 교량 스페인 세빌레에 있는 ‘알라밀로교’(Alamillo Bridge), 제6번째 교량 스위스의 ‘모토웨이교’(Motorway Bridge), 5번째 교량 독일 뒤셀도르프의 ‘크네이교’(Knee Bridge), 3번째 교량으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만에 있는 ‘노르망디교’(Normandy Bridge)까지 다 건넜으니 울진 응봉산을 등반하면서 세계를 일주한 셈이다.
통념을 깨고 협착한 계곡에 세워진 유명한 다리들의 나라에는 한류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부터 응봉산 계곡은 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될 것이다.
노천 온천수로 등반객들을 위한 세족장을 만들어 놨다. 흘러가는 물가에 앉아 발을 씻고 물기를 닦도록 마른 수건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천연온천수에 느긋하게 발을 담갔다가 씻고 흐르는 찬물에 행구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시고 생기가 넘친다. 솔향기 그윽한 능선과 계곡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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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응봉산에서 세계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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