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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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는 시간의 경계선을 넘어버렸다. 어제를 떠나서 새로운 오늘로 넘어온 것이다. 새해가 되면 과거의 우리 어르신들은 기도원을 찾아 나섰다. 산으로 올라가면 많은 것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꽉 막힌 듯한 현실 속에서 눈을 높이 들어, 그가 나아가려는 길을 찾고자 함에서 산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비행사였던 리처드 바크는 그의 ‘갈매기의 꿈’에서 ‘높이 오르는 자라야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높이 오르려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잠시라도 떨어져 나와야만 하는데, 어디, 사람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연말연시라 해서 모임들이 얼마나 많은가? 만약에 그 자리에 참여하질 못하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이 쉽사리 그 집단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허지만, 이 갈매기는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르면서 저 바다 끝에 있는 것을 보려한다. 벌써 마음에는 그 끝을 보고 있는 것인지? 그는 날개 쳐 올라서 날기 시작한다. 지난해 초에 저어새의 이동 경로가 GPS를 통해서 밝혀진 것을 보면, 대략 700km를 날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새가 남동쪽에서 올라올 때는 거의 먹지를 않고 20일 이상 난다. 먼 길을 간다는 것은 많은 모험도 뒤따르지만, 많은 짐을 지고서는 결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기에,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간소화해야 하고, 먹는 것조차도 절제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날을 밤낮으로 날아가 비로소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다.
예부터 사제들은 신전에서 독수리가 나는 것을 보면서 앞날을 예측하였다. 이를 보고 동양에서는 길조라 하였다. 독수리 같이 높이 오르면 전체를 보게 되고, 정확하게 목표를 세워서 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성경의 시인들은 높은 산에 오르며 노래하였다. 아마도 그의 영혼에 거룩한 장소를 말하는 듯하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기력이 쇠하여진 상태로 있지를 아니하고 다시금 새 힘을 얻질 아니하던가? 시인은 사슴의 발과 같이 되어서 높은 곳에 오르며, 산들을 뛰어넘고 적들을 쓰러트린다. 그의 연약하게 보이던 허리에는 이미 능력벨트를 띠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하던 이들마저 독수리처럼 높이 떠서 힘차게 난다.
 기도한다는 것이야말로 마치 독수리처럼 높이 오른다는 것인데, 높이 올라야 보이기 때문이다. 독수리 같이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리처드 바크는 두려움 때문에 높이 오르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고공비행을 하는 전투 비행사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저들을 훈련하는 교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행기 조종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비행기 정비사가 될 것인가를 최종 결정할 때에,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난 후에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거의가 비행기를 타기 이전에 정비사가 될 것인지, 비행사가 될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높이 오르려면 먼저 자신에게 침투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데, 믿음을 익히고 터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높이 오르면 보게 된다. 요한은 거듭해서 그의 복음서신에서 ‘나는 본 바요 들은 바요 아는 바라’한다. 본다는 것은 바로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가야 하겠다’는 문장은 이미 그가 사마리아로 가야할 것을 알아 차렸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수가성의 우물가에 앉아서 그에게 다가오는 구도자를 기다렸는데, 요한에게서는 그 구도자들이 주로 여성들로 등장되며, 저들은 기회를 놓치질 않고 포착하였다.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수가성의 그 여인은 사마리아의 선지자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이미 얻은 자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미리 보시고 아시며, 그녀의 앞길도 보여주시는 것을 보라! 그녀 또한 많은 시민들을 이끄는 자가 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 훌쩍 떠나서 광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시험 몇 가지를 이겨낸다. 우리는 그 장면에서 예수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만국을 다스리시는 자이시며,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만 경배 드리는 분이심을 계시하셨다. 연말연시다. 사람들에게 숨어있지만 말고, 홀로 주님이 계시는 지성소로 나아가 보라. 모세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였고, 어거스틴도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왕국을 불수 있었다. 과감하게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더 큰 것, 더 큰일을 말씀하시고, 머뭇거리질 않으시고 단번에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이는 그가 기도하는 분이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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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교회, 행복한 세상-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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