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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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지막 날과 2016년 새해 첫날,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햇빛 받은 나뭇잎들은 향유로 기름부음 받은 듯 눈부시게 빛나며, 공기는 온통 덩달아 향기롭습니다. 남쪽 바닷가 몽돌들도 파도와 함께 제자리 지키며 하늘 향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골고다로부터 들려오는 <침묵 속의 아가(雅歌)>. 2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 같은 하늘의 시간엔 늘 현재만 존재하기에, 오늘도 그 침묵 속의 사랑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그렇게 오늘도 여전히 그때, 그곳에서처럼 ‘아버지’는 온 우주를 흔드는 침묵 속에서 사랑의 오열을 터트리십니다. 인간의 고막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듣지 못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선 그 사랑의 오열로 인해 바위가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문둥병자가 낫고, 성전의 휘장이 위 아래로 찢어집니다.
인간의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지은 만리장성엔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IS로 둔갑되어 곳곳에서 테러가 자행되며, 현대판 노아 방주는 세 살짜리 사내아이조차 구하지 못하고 해변 모래가로 토해냅니다. 갠지스 강가의 개들은 이미 우두머리 되고 싶어 하는 이 세상 권력자들과 손잡고 떠내려오는 시체 주위를 어슬렁거립니다. 이처럼 세상은 점차 산 자의 세계가 아닌 죽은 자의 세계로 변해 갑니다. 세상은 어느새 오염된 심성들의 어른들로 가득 찼습니다.
아, 아버지. 이 모든 악하고 더러운 것들 성령의 불로 태워 주십시오. 그게 안 된다면 우슬초로 정결케 씻어 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처럼 난생 처음으로 아빠가 사주신 크레파스 손에 쥐고, 아빠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새하얀 종이 위에 생기 넘치는 생명의 세계를 그리고 싶습니다. 성령의 바람과 생수의 강물로 기쁨과 희망의 세계를 그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은총 속에 동터온 새해엔 새 혼불, 새 영혼으로 새 일, 새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먼저 불꽃이신 당신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가 저의 딱딱한 굳은 뼈마디, 흐물흐물해진 사고, 늘어진 몸뚱이 등 그 형체조차 자취조차 없애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줄탁. 암탉처럼 날개 안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골고루 품어 주시다 깨뜨리시면 저도 그 안에서 구각을 깨고 새생명으로 나오겠습니다. 죽음의 부활처럼, 밤을 낮으로, 고통을 환희로 빚겠습니다.
단 한번뿐인 삶, 끄트머리 생의 여정, 꿈 같은 삶. 오직 사랑이신 당신께만 매달려 살겠습니다. 당신의 춤, 당신의 비파가 되어 노래하며 살겠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들의 인생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하늘은 생명의 흐름을 양떼구름의 입을 통해 역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낮아짐의 도(道). 비움의 도(道). 들의 꽃, 공중의 새. 그들을 통해 가난한 당신을 다시 노래하게 합니다.
감동에 벅차, 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말할 수 없는 은비(隱秘)의 부요에 무릎 꿇으면, 어느새 마를 대로 마른, 겨울나무의 텅 빈 목관 악기 같은 몸뚱이, 외경에 전율하며 사랑에 취해노래를 부릅니다. 언젠가 들려주신 말씀이 스멀대며 고개를 내밉니다.
 “난 널 보았단다. 네가 배나무 하얀 꽃잎 떨어지는 봄날에 한 마리 꿀벌 되어 붕붕 날아 다니는 것을, 말씀 꿀 송이 하나 가득 담고 내 사랑에 취한 네 모습은 마치 여자 사사 드보라 같았어. 남편을 둔 주부로서 두나미스, 넌 내가 오는 길 닦는다며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길 기도했지. 얘야, 여사사 드보라 이름의 뜻도 꿀벌이야. 그러니까 너흰 둘 다 꿀벌인 셈이지. 생동감 넘치는 면에서 너와 똑 닮았단다. 넌 어릴 때부터 나비되어 날아다녔잖아. 이제 알겠니? 그때도 나와 함께였음을. 이젠 꿀벌이네, 후우! 재미있구나. 넌 시간이 지날수록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새 술에 취해 빨개진 얼굴로 아침 해가 힘 있게 돋는 것같이 성령의 은빛 날개 퍼덕이며 사방을 날아다녔지. 난 밤이면 그런 너에게 큰 날개를 주어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게 했단다. 이제 그때를 다시 그려 봐”
지금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넓이를 알 수 없는, 높이를 알 수 없는 우주공간으로부터 아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깊고 깊은 영혼 속으로부터 들려옵니다. 그분의 끝나지 않는 침묵 속의 노래. 그 노래 속에 사랑하는 자의 명(命)이 들어 있음에 겸허히 무릎 꿇습니다.
“…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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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드보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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