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 항구를 출발해 미국으로 향하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4월 15일 새벽 바다 한가운데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승객 2천2백여 명을 태우고 뉴욕 항구를 향해 소위 처녀항해를 하던 거대 선박이었는데, 항해 도중 다른 선박들로부터 빙산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누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이 거선이 결코 침몰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승무원들을 굳게 믿게 했던 수밀격실(水密隔室)에는 하나씩 점차적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침몰 사태로 불귀의 객이 된 승객들은 무려 1천5백여 명이나 되었다. 이 선박에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갑판 밑의 3등실 승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보는 이들과 관련자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그런데 이 선박은 실제로 빙산과 충돌하기 전에, 즉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두에 정박해 있던 뉴욕호 여객선과 충돌할 뻔한 일이 발생했었는데, 이 일로 인해 승객들 사이에서는 이 거대 여객선에 대한 안전 및 기술 여부에 대한 의문이 일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영화 <타이타닉>이 만들어져 많은 이들이 이를 관람하였다. 그 영화 가운데서 특별히 나를 감동시켰던 장면은 그 아수라장과 같은 혼란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키를 잡고 선박과 함께 운명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선장의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영화의 이 장면은 결코 실제에는 없었던 일을 영화에서 가공으로 만들어낸 장면은 아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그 선장 이름이 에드워드 스미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선박 침몰 사건이 근래(2014년)에 있었다. 모두들 너무도 잘 아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서 이날이 4월 16일이었으니 묘하게도 타이타닉 침몰 일자(4. 15)와 겨우 하루 격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건을 지켜보았던 많은 이들이 너무도 실망했던 것은 선장 이준석 씨가 팬티 바람으로 젊은 승무원들과 함께 먼저 배에서 내리는 장면을 직접 목도하게 된 일이었다. 수백 명의 승객들을 배에 그대로 놔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을 뒤로한 채 자기들만 살겠다고 재빨리 도망쳐버린 꼴이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요즘 이와 유사한 선박 침몰 사건이 정치판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그 선박은 이른바 제1야당인 ‘더민주’호이다. 다가오는 총선(總選)을 위해서나 그 후에 오게 될 대선(大選)을 위해서 국민들(유권자들)이 큰 기대를 걸고 있던 제1야당이 지금 바다 한가운데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기 직전의 형편에 놓여 있다. 타이타닉호가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두에 정박해 있던 여객선 뉴욕호와 충돌할 뻔한 일이 일어났었던 것처럼, 더민주호도 그와 흡사한 일이 결코 없었던 게 아니므로 더욱 경각심을 지녀야 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해, 보이지 않는 빙산과 지금 충돌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 ‘흡사한 일’이 바로 지난번 치렀던 각종의 보궐선거에서 제1야당이 참패함으로써 그 당 대표에게 가해졌던 충격파였다고 하겠다. 그때 적의하게 처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침으로써 그는 지금 그 당 전체의 운명을 ‘빙산과의 충돌’ 직전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당이 침몰하기 직전의 혼란 상태에서 하선(下船)하는 일은 마치 이준석 선장이 취했던 몰염치한 처신과 흡사한 것이다. 당이 흔들리지 않게 요지부동의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게 당 대표로서 취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는 다 흘려보내놓고 이제 침몰하기 직전 상태에 이른 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치 팬티 차림으로 허겁지겁 하선하는 일은 아무리 봐주려고 해도 봐줄 수 없는 떳떳하지 못한 처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소위 제1야당의 대표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을 우리가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글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리가 전혀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전(前) 통합민주당 이기택 총재 때의 일이 갑자기 떠오르기는 한다. 지역구도 타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어느 특정 지역 인사들에 대한 물갈이를 시도했던 탓에 15대 총선의 결과 과거 의석수의 절반밖에 얻지 못해 꼬마민주당이라는 치욕스런 호칭을 들으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멀어져 갔던 일 말이다.
당시 DJ(김대중 씨)가 그와 결별하면서 새로운 정당을 이끎으로써 이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일이 함께 떠오른다. 현 ‘더민주’ 당 대표는 이런 과거사를 참고삼아 지나치게 독단적인 특유의 정치 놀음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 게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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