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유대인의 왕 아그립바 (AD 37-44) 왕과 로마를 대표한 총독 앞에서 전도할 때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총독 베스도가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하고 말하였다.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精神)으로 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정신으로 바울은 참 말을 한다. 이는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하늘의 뜻이 있으면 거기에 따른 삶으로 말하는 참된 진실이 담겨 있다.
삶은 이 뜻을 따라 살아 가는대에 생명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는 삶을 이끌어 가는 기본적인 삶으로 정신(精神)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생각이나 감정의 작용을 다스리는 인간의 마음을 말할 때는 정할 정(精)과 하늘의 신(神)자가 들어가 精神을 말한다. 국어사전에 정신(精神)이란 단어의 뜻은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가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 또는 각오로 말하며 정신세계. 정신 자세. 건전한 정신. 희생정신이 여기에 해당하고 두 번째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 예로써 '정신을 차리다. 정신이 없다'를 말한다.
세 번째는 이념이나 사상을 말한다. 그 예로서 삼일정신, 나라나 사랑의 숭고한 정신을 말할 때 쓰인다. 한다. ‘정신을 잃다’는 말은 의식을 잃거나 얼떨떨해질 쓰인다. 또한 속담에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그 의미가 잃었던 의식을 되찾거나 정신을 가다듬거나 하는 경우에 쓰인다.
이렇게 정신(精神)의 포괄적인 의미는 사고나 감정의 작용을 다스리는 인간의 마음을 말하며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영적인 존재나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또는 그런 작용을 하며 사물의 근본이 되는 의의나 목적을 알게 하여 마음의 자세나 태도를 희생의 정신, 신앙의 정신을 불러일으키게 함을 알게 한다.
이 정신이 예수의 정신이기에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삶의 정신을 말한다.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치를 추구하는 것이 그 정신이다. 그리스도교의 정신이 있다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목적에서 세상을 위해 베푸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삶으로 친히 살아오신 예수님의 행적과 그의 생명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불변하신 절대적이며 초월적인 능력의 힘을 믿게 한다. 여기에 그가 세우신 교회는 진리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증거와 말씀의 선포로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라고 말씀하심은 영성이 훌륭한 사도바울도 이렇게 고백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 사도바울의 고백은 "율법아래 있을 때 사망의 몸 안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망의 멍에 에서 우리는 이미 해방 받았다"고 회개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짓지 않게 삶에 정신을 차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죄를 짓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영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으며 여기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이 함께 하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능력인 “믿음으로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精神)의 포괄적인 의미로 사고나 감정의 작용을 다스리는 인간의 마음을 말하며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영적인 존재나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을 함으로 사물의 근본이 되는 의의나 목적을 알게 하여 마음의 자세나 태도를 희생의 정신, 사랑의 정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곧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약속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는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섭리 안에서 사랑하고 평화롭고 스스로 자유롭게 서로가 스스로 사는 삶을 살도록 존재의 의미를 부여 하신 믿음을 갖게 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바울의 절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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