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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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대 중반 기독교 안티들이 온라인에 등장하면서 기독교적 가치에 관한 본격적인 논쟁이 일었다.
기독교적 가치 논쟁의 본질을 살펴보면 복음진리 소유권 문제이다. 안티 기독교들은 지금도 기독교의 절대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구원진리 소유권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독교 인사들에게 대한 공격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진리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내부 인사들이 저들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진리를 붙들고 살아간다면 절대로 그런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그것도 자주 말이다.
특히 최근들어 교회인사들의 부정과 부패는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드러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크기의 사고 정도로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문제는 웬만한 사건사고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우리를 경악시키는 메가톤급 사건이다.
일반인들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신학교수 신분의 어느 목사가 자신의 자녀를 학살 한 사건은 기독교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로 하여금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게 했다. 복음 전도자들을 망연자실하게 했다. 전도 현장에서 절망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무슨 언어로 다가갈 수 있는가? 어떻게 기독교 가치를 설명해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겠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사건 후에 터져 나온 북한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 차라리 반갑기까지 했다. 사회 전체로 확산되던 기독교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잠시나마 김정은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를 차라리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믿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인생이 과연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독교적 가치를 무효화 할 수 있는가? 또한 몇몇 말썽꾸러기 기독교 인사들에게 의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없어질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리도 그와 같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일들은 부정해도 하나님의 일은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하나님의 진리, 기독교 가치를 세상적 가치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지 않은가?
상대적 가치가 절대적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면 절대적 가치를 굳건히 붙잡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범죄행위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슬퍼해야 한다. 울어야 한다. 가슴을 찢어야 한다.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야 한다. 사람들의 눈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애가처럼, ‘슬프다 이 성이여,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려내림이여,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라고 울고 또 울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렸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참으로 크시니이다’ 가 아니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줄 터인데’ 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무효화 시킬 수 없다는 이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4세기 초에 어거스틴(Augustinus)과 도마투스(Aelius Donatus)의 세기적 논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씀해 준다.
배교자 문제와 교회론에 관한 논쟁이지만 인생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교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의 몸인데 부패할 수 있는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인생들이 부패할 수 있으나 부패한 인생들을 정리하는 것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독교적 절대 가치, 복음의 절대 진리를 아직도 교회에게 일임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 이제 다시 한 번 그 가치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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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가치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라-이 억 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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