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까마귀는 영특한 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구약에서 대홍수 후 까마귀가 정찰꾼으로 선발되어 최초로 방주를 벗어난 생물이 된 것은 밝은 눈과 지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하나님이 까마귀에게 명하여 숨어 지내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날라주게 했다는 대목에서는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세계 도처에서 전해지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신의 심부름꾼으로 활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는...
그리스신화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신 아폴론을 시중들었는데, 색깔이 희어 은빛이었고 목소리는 고와서 인간과 대화하는 지혜로운 새였다나. 어느 날, 까마귀가 아폴론의 아내 코로니스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 남자 이수키스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폴론에게 밀고하자, 화가 치민 아폴론이 활로 코로니스를 쏘아버렸는데, 죽기 직전 코로니스가 아폴론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고 하자, 후회한 아폴론이 이번에는 밀고한 까마귀에게 분풀이 한다. 아름다웠던 날개는 검어지고 고왔던 목소리는 듣기가 민망하도록 쉬어버린 것이다.
이솝 우화에서는, 병 속에 있는 먹이를 끌어내기 위해 병 속에 돌을 집어넣어 수위를 높이는 영특한 까마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신화의 세계에서도 까마귀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좋았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그 지능이 지나치게 높아 고대인들에게는 교활하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까마귀가 지능이 발달한 새라고 일컫고 있는 것 같다. 까마귀는 어느 정도 사회성을 지니고 있어, 끼리끼리 협력할 줄도 안다는데,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단다. 전선에 매달리려 노는 꼴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거나, 경사진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미끄럼을 타는 등... 그들이 놀이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관찰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색을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개체 별로 분별해서 기억해내고, 식물과 가축, 페트를 포함하는 포유류와 조류를 구별해서 인식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에게 사육된 까마귀는 앵무새 못지않게 인간과 가축의 음성을 흉내 낸다나.
한편, 까마귀의 문제해결 능력이 영장류에 버금간다는 평가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낼 뻔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1996년, 일본 가나가와 현의 철도레일에 까마귀가 돌을 올려놓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철도당국이 그들의 집을 철거한 데 대한 복수로 열차를 전복하려 한 짓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관찰 결과,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주둥이로 돌을 물어 옮겨놓는다는 것이 우연히도 레일 위에 둔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러나 까마귀가 대적자로 여기는 엽사(獵師)나 청소부와 같은 인물은 기억해서 동료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그들의 집이나 자동차를 더럽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물건을 수집하는가 하면, 공원 미끄럼틀에서 놀이를 즐기는 등, 직접적으로 번식이나 생명유지와는 무관한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얄밉지 않은가.
까마귀고기는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져 왔다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력에 좋다는 입소문으로 씨가 마를 지경이 되었다던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까치만 흔하고 까마귀는 볼 수 없어서, 그 소문을 은근히 믿고 있는 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전 경기도 북부에서 까마귀를 보았기에, 뜬소문에 쉬 혹해버리는 늙음을 탓하면서 웃고 말았다.
암까마귀와 수까마귀를 분별하기 어렵다는 속담은 까마귀의 암수를 가리기 힘들다기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까마귀의 속성과 속내를 알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푸념이 아닐까 싶다.
국어사전에서 “선량(選良)”이란 단어를 찾으면, “뛰어난 인물을 뽑음. 또는 그렇게 뽑힌 인물” 또 “국회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란 풀이를 볼 수 있는 데, 까마귀만큼이나 헷갈리게 하는 풀이가 아니가싶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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