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이들과 함께 걸으시며 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눅 24:27). 말하자면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자신에 관하여 예언된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설명해 주신 것이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초청하여 같이 저녁 식사를 먹으려고 할 때 예수께서 축복기도하시고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예수께서 그 자리를 뜨고 계시지 않았다. 이때 그들은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성경을 열어주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안에서 뜨거워지지 않았는가?”(32)라고 말한다.
여기서 개역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라고 번역하고 있다. “풀어 주셨다”라는 말은 헬라어 “디아노이고”를 번역한 것이다. “디아노이고”라는 말은 “열다”(open) 혹은 “설명하다”(to explain) “해석하다”(interprete)라는 뜻이다. 그런데 누가복음 24장에는 “디아노이고”라는 말이 세 번 사용되고 있다.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제자들에게 하신 일을 기록하며 이 어휘를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3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눈을 열어 주셨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스승의 죽음으로 실망과 좌절을 안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초청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기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눈먼 제자들과 함께 걸으시고, 성경을 가르치시고, 함께 잡수시고, 함께 기도하시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어 그들의 육신의 눈을 열어 그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셨다. “디아노이고”(διανοι’γω)는 눈을 열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둘째는 성경을 열어주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눅 2:23에는 “디아노이고”(διανοι’γω) 가 “자궁을 연 모든 남자”(every male that openes the womb), 곧 "모든 첫 아들" (every first-born male)이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예수께서 “성경을 해석해주시다” 혹은 “성경을 열어 주시다”는 두 가지의 번역 가능성이 있다. 예수께서 성경을 해석해주셨다고 번역한다면 설명이 쉽다. 예수께서 구약성경을 찾아가며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며 영광에 들어가야만 할 당위성에 대하여 설명하시고(26), 나아가서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성경을 열어주셨다”고 번역할 경우에는 설명이 달라진다. 이 번역에 의하면 지금까지는 성경이 닫혀있었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비로소 성경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신 일이 우리의 감긴 눈만을 뜨게 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의 눈이 감겨있었다고 한다면 성경은 예전부터 열려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문제는 우리의 눈이 열리지 않아 성경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경을 열어주셨다. 이 번역을 따르는 성경은 ASV, ESV, KJV, NIV, RSV 등이다.
그리고 “설명하다”(explaining)로 번역한 성경은 NAS, NET 등이다. 대다수의 역본이 예수께서 성경을 열어주신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일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뿐만 아니라 성경도 열어주셨다. 지금까지 닫혀 있던 성경을 열어주셔서 비로소 우리는 성경 안에 담긴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에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황금으로 가득찬 지하 동굴이 발견되어 비로소 그 동굴의 문이 열린 것과 같다. 그리하여 황금 보석이 가득찬 그 찬란한 동굴 내부가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 세계에 공개되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성경은 마치 감추인 보화와 같았다. 우리는 아무리 구약 성경을 읽어도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셔서 친히 감추어졌던 비밀의 문을 여시고, 자신이 바로 그 보화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그동안 비밀에 싸여 있던 성경 안의 모든 비밀을 활짝 열어 재치고 찬란하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눈먼 제자들을 열린 성경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신 것이다.
셋째로 45절을 보면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도록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마음을 열었다는 말에도 “디아노이고” (διανοι’γω)를 사용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 가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놀라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영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말씀하시며,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예수께서는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드린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오경, 선지서, 시편을 열어가며 자신에 대하여 언급한 곳을 찾아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다. 그때에 비로소 제자들은 마음을 열어 말씀을 받고, 주님의 부활을 믿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육신의 눈을 뜨게 하고, 마음을 열어 부활을 믿게 하시고, 자신을 믿게 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성경을 열어주시고, 성경을 가르쳐 제자들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 때까지 제자들을 위하여 하신 일이 성경 가르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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