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모든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바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알면서 진지하게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이 이야기 속에는 교회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서도 중요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도전 가운데 하나는 교회 성장이 정체되거나 심지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유럽의 교회는 무너진 지 오래고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성장률보다 이슬람교의 성장률이 앞서고 있다. 따라서 폭발적인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교회에서 조차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 문제로 떠 오른지 오래다. 그렇다면 복음의 생명력을 본질로 하여 지금까지 놀랍게 성장해 왔던 교회가 왜 이토록 정체와 쇠퇴의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과 반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즉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장을 멈춘 한국 교회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본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있는 자리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을 잃고 교회가 성장을 멈추었던 이유를 그 어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바로 우리 자신들 속에서 찾아야한다. 하지만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여전히 이 곳 저곳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여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인터넷을 검색 한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교회를 살찌우고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노력 이전에 우리는 주님의 본 때문에(눅23:34) 그리고 그분의 명령 때문에(마 18:21~35 골 3:13)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희생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요일 3:16).
이제 필자는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한 세분을 소개 한다. 먼저 바나바이다. 그는 주를 영접하고 이미 자기 전 재산을 교회에 희사한 인물이다(행 4:36, 37). 안디옥이라는 요즘 말로 말하면 편하고 물 좋은 대교회 목회를 마다하고 전인미답의 이방 선교에 발을 들여놓은 신앙의 인물이다. 다음 바울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다니던 사람이다. 그러한 그가 주님을 만났다. 그는 히브리인이라는 선민의식, 많은 재산,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권리, 세상의 모든 지식 등을 배설물과 같이 포기했다. 그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위해서이다(빌 3:8). 끝으로 50만 명이 넘는 군인, 공무원, 청년, 학생, 각계 각 층의 중견 인사들에게 개척자의 혼과 신앙의 씨를 심었던 고 가나안 농구학교의 김용기 장로라는 인물이다. 그의 위대한 점은 바로 한 가족 11명이 모두 기독교의 희생정신으로 평생 동안 꾸준히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희생정신으로 인해 밥 한 톨 남기지 말라거나 열심히 일하라는 그의 가르침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로 이시대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희생정신을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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