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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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작가를 와룡(臥龍)-옆드려 있는 용-에 견주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명품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광수의『유정』(1933년)이 <조선일보>에 연재될 적에는, 장안의 청춘 남녀들이 신문을 구독하기 위해 배달되기 몇 시간 전부터 문밖에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시의 경우에는 김소월의 「초혼」이나 한용운의「님의 침묵」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김소월은 그의 아버지가 일본인 철도 노무자에 머리를 맞아 실성하는 정신적 외상으로 인하여 자살하였고, 한용운은 일제가 만든 신분증을 만들지 않는 등의 절개를 지키느라 순사들에게 온갖 곤욕을 겼었습니다. 요즘에는 성석제의 『투명 인간』(2014), 정유정의 『28』(2013) 등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편입니다. 독자들은 그들의  흥미진진한 플롯과 돋보이는 문체 등에서 뜨거운 감동을 받기도 하지요. 이들은 실제로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서 뜬 경우에 해당하지만, 이와는 달리 지인들에게만 읽히는 작품도 없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작가를 ‘와룡(臥龍) 선생’이라 부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이 땅에는 2만여 명의 시인과 작가 들이 활동하고 있고, 나름대로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뜰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지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한 꿈을 삶의 동력으로 삼곤 하지요. 그래서 한 해에도 수천 명의 문예창작과 출신 학생들이 꿈을 찾아 나서고, 문예지나 신춘 문예 문을 두드립니다. 유명 문예지나 이름 있는 신문을 통해 등단하려면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나 독자들로부터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받으려면 수만 대 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야 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쓴 글 가운데 불과 몇 편만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나아가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되려면 작가의 작품이 적어도 5개 국어로 번역될 만큼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지요. 더구나 이십대의 나이에 인기 작가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작가라면 누구나 좋은 글을 내기 위해 몇 개월 내지 몇 년을 고뇌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글이 숙성되기를 기다리지요. 그래서 작가들은 교사나 출판인 등의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와룡(臥龍)처럼 자신의 작품이 뜰 날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필자도 삼십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가 된 지도 삼 년이 되었습니다. 몇 군데 문예지와 신문에 평론과 산문을 연재하면서 원고료도 받고 있으니 전업 작가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온전한 전업 작가로 자리매김되지는 않았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려면 원고료만으로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내가 생활 전선에 나서고 있는 편입니다. 간호사인 아내에 비하면, 필자는 백수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설거지나 빨래 등의 집안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애들이 공부하라는 부모 앞에서 공부하는 시늉을 하듯이, 언제부턴가 필자도 아내가 퇴근하기 두 시간 전부터 집안 일을 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입니다. 설거지는 30분, 빨래 30분, 청소 한 시간이면 가사(家事)를 어느 정도 끝낼 수가 있더군요. 그러다가 청소도 이삼 일에 한 번 하니 집안 일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더군요. 그래도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중 그 두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독서와 사색 등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작가의 생활이 단순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색으로 서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헬스와 산책과 바둑 두기 등으로 시간을 때우니, 직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만의 고독을 사색으로 때우는 일이 여간 즐겁지가 않습니다. 영화 감상이나 여행보다도 더 재미나는 일이 사색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이 생겼나 봅니다.
그러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설움도 없지 않습니다. 아내는 따분하게 소파에 앉아서만 일하니 건강에 안 좋다며, “무브(move)”를 외치지요. 또한 아들놈이 자신의 이력서에 아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적는 것을 보면, 내가 백수가 맞나 하고 혼자서 되뇌이곤 한답니다. 이때 생각나는 분이 삭개오의 집을 방문한 예수님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였지요. 세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면서 중간에 이득을 취했으니 백성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삭개오를 소외시키지 않고 직접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신 게지요.
한때 글쓰기와 대학 강의와 직장 일을 병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도 네 군데에 출강하였었고요. 그때 필자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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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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