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jpg
 모윤숙. 그녀는 일찍이 『렌의 哀歌』(1937)란 시집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앉아 밤을 샙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작고 큰 별들이 떨어졌다 모였다 그 찬란한 빛들이 무궁한 저 편 세상에 요란히 어른거립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는 무한한 암흑 속에 꼭 파묻혔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허공 중에서 마치 나는 당신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조용히 꿇어앉았습니다.” 깊은 밤에 누구나 한 번쯤 그리운 이를 생각할 법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감을 젖게 하지요. 그녀는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의 암울한 심정을 깊은 밤으로 묘사하면서 그리운 이를 통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자아를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그리운 이는 곧 임이며 얼로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근원이었습니다. ‘시몬’은 기독교에서의 주님으로 확대 해석이 가능합니다. 자아를 숨쉬게 하고, 생동감 있는 일상을 느끼게 하는 주님 말입니다.
 광복 후 미 군정 시절에 하지 중장은 한국에서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은연중에 김규식을 한국의 지도자로 점찍고 있었습니다. 이때 유엔한국위원단이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신탁 통지 할 것인가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유엔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대표 단장이 바로 메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중립국이었던 인도의 네루 수상에 버금가는 역량 있는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주장하는 이승만 진영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생리를 잘 아는 이승만은 이대로 가다간 북쪽의 김일성 술수에 말려들어 나라가 혼란과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습니다. 당시 작가는 요즘의 K-Pop 가수에 해당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광수 등 당시 내노라 하는 작가는 친일 문제에 휩싸여 반성하는 의미로 칩거하고 있었습니다. 이광수의 문단 후배였던 모윤숙도 친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최종고, 『대한민국 건국과 한국 여성』기파랑, 2012/ 199쪽 참조). 그때 그녀는 이승만의 비서인 이기붕한테서 민족대표자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박사에게 국내에도 인재가 있으니 난국을 바로잡는 데 활용하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유엔한국위원단 회의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문학에 대한 식견이 높던 메논(유엔한국위원단 단장)을 만나게 됩니다. 메논은 모윤숙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느끼고 그가 주재하는 파티에 모윤숙을 자주 초대하게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메논은 인도 정부의 뜻에 따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에, 모윤숙은 메논의 태도를 한국적인 입장으로 돌리는 데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한만의 총선거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논은 2,3일 후면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는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모윤숙은 메논에게 말을 꺼냅니다. “인도에는 타지마할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명성황후라는 분인데, 그분 묘가 동구릉 쪽에 있습니다. 교교한 달빛 아래서 보면 한국에서의 당신 감회가 남다를 겁니다.” 이렇게 하여 그를 동구릉으로 안내한 후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이승만이 있는 이화장으로 데려갑니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치르려 하는 이승만을 만나기 꺼려 했던 메논은, 이승만이 반갑게 맞이하자 당황하며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수많은 사람이 서명한 민원 두루마리를 보여 주며 한국 국민의 염원이 담긴 이것만이라도 유엔에 가져가서 보여 주기를 간청합니다. 이후 이승만의 끈질긴 유엔 외교 덕에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경성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던 모윤숙은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피신하였습니다. 오랜 피신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죽음을 선택하려 할 즈음, 그녀는 한 병사의 시신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는 젊은 병사의 주검을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민족의 얼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서 쓰여진 시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입니다.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부분). 그녀는 병사의 혼에 들어 있던 민족의 얼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얼을 살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독교인의 행복론 -17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