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라틴 교부의 한 사람인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T.C. Cyprianus)는 도나투스 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친애하는 도나투스, 이 세상은 포도나무 그늘 아래의 나의 정원에서 본 것과 같은 이름다운 세상이지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이 높은 산에 올라 거친 대지를 바라본다면 당신은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요. 노상강도, 바다의 해적, 군대의 싸움, 도시의 현란하고 방탕함, 원형 경기장에서 환호하는 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결투, 자기 본위의 이기심, 잔인성, 화려한 지붕 아래 있는 고통과 절망들... 도나투스, 이 세상은 악이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한 곳이요. 그렇다. 키프리아누스의 말처럼 인간의 소욕대로 이 세상은 얻을 것 많고 갖고 싶은 것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말씀의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악한 세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헌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상이라는 곳에 살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세상이란? 세상의 본질은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창조된 선한 창조물이며 하나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누리도록 선물로 주셨다. 다음으로 세상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들의 다스림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역하고 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늘 이 두 관점을 적절히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 만약 먼저 것에 관점을 둔다면 장미빛 에덴동산의 환상에 싸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달려드는 마귀와 세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핍박의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관점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늘 극단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악하다고 늘 불평하며 적대적인 태도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교회 밖의 모든 것 예컨대 하나님께서 인류 복지를 위해 일반 은총으로 주신 권력, 돈, 지식 등은 다 부정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합리적으로 처리하자고 말하면 곧 세상 지식을 앞세운다고 비난하며 세상의 통치자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이라고 말 한다. 또한 상품이나 증권이 거래되는 시장은 모두 도둑의 소굴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곳에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또 그러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다. 그리고 세상과 평안히 지낼 수 있는 문제들에서도 괜한 충돌을 일으키며 세상에서 스스로 소외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자.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악에 대한 기준이 달라야한다. 곧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눈을 기준으로 살아가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사람의 눈에만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행동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매사에 조심하고 거룩하게 살아야한다. 즉 세상 사람들이 악을 저지르고도 이를 속이고 감출 수 있다 하여 기뻐할 때 그리스도인은 적은 잘못과 실수에도 마음 아파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민족의 지도자 이상재 선생이 1911년 봄 일본 YMCA의 초청을 받고 일본에 간 일이 있었다. 일본의 속셈은 선생으로 하여금 독립 운동의 꿈을 버리게 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식사 후 총리대신 등 일본의 정치인들을 앞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일본이 강대국이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지 모르나 진짜 위대한 왕국과 왕은 따로 있습니다. 이 분은 한순간에 일본을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분을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분은 바로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이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매사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선행에 대해서도 그 기준이 달라야한다. 곧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하기에 사람들이 알아주는 한도에서만 선행을 하려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기에 어디서든 은밀하게 선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도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 기뻐하고 아무리 큰 선행이라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슬퍼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눈과 관계없이 일정한 모습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선행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의 옅은 눈을 기준으로 일희일비하는 얄팍한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죄악 된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세상을 품고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적극적으로 선행을 행했던 것처럼 세상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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