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을 건네받은 소양왕은 몹시 기뻐하면서도 정작 내어줄 성에 대해서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사신이 입을 열었다. “그 구슬에는 티가 있습니다. 신이 그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고 구슬을 손에 되받아드는 순간 뒤로 물러서면서 왕에게 말했다. “조나라에서는 진나라를 의심하고 구슬을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신이 굳이 진과 같은 대국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리 없다고 우겨서 구슬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선 성을 내주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고로 신은 다시 구슬을 가져가겠습니다. 대왕께서 구슬을 강요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이 구슬과 함께 기둥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제야 왕은 지도를 펴놓고 땅을 내주라고 말한다. 꾸며낸 짓거리임을 아는 사신은 구실을 만들어 구슬을 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날이 새기 전 몰래 수행원에게 들려 돌려 보내버렸다. 진왕은 속은 것이 분하지만, 대국으로서의 체면 때문에, ‘인상여’를 후히 대접해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 진나라는 구슬 보다 더 귀한 인재를 가졌기에 “완벽(完璧)”이라 일컬어지는 구슬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완벽”은 흠이 없는 구슬이란 뜻도 되고, 구슬을 온전히 보존한다는 뜻도 된다.
다음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의 화씨편(和氏篇)에서... 변화(和)는 초(楚)나라 구슬감정인. 어느 날 산에서 귀한 보석이 될 원석을 얻어 여왕(王)에게 바친다. 옥을 맡고 있는 이에게 감정을 하게 했더니, “그냥 돌에 불과하다”는 것. 화가 난 왕은 거짓말쟁이라면서 화의 왼발을 잘라버렸다. 여왕이 죽자, ‘화’는 원석을 무왕(武王)에게 헌상했다. 왕은 다시 그를 거짓말쟁이로 다스려 오른 발을 잘라버렸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지만, 이제 ‘화’는 진상하지 않는 대신, 품에 원석을 안고 초산 기슭에서 삼일 밤낮을 통곡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말라버리자 피를 흘렸다. 소식을 들은 문왕이 그 연유를 물었다. “천하에 발을 잘린 사람은 많지 않는가. 그런데 너는 왜 그리 슬피 우는가?” “발이 잘린 것이 슬퍼서가 아닙니다. 보석을 돌이라 하고, 나처럼 정직한자를 거짓말쟁이로 인정하는 것이 슬플 뿐입니다.”
왕은 옥을 다듬는 사람을 시켜 원석에서 귀한 보석을 얻었다. “화씨의 벽(壁=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완벽(完璧)이란 이름이 더해진 그 구슬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쯤해서 한비자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 보자.
“구슬은 군주가 탐을 내는 것. 그렇다고 구슬감정가 ‘화’가 헌상한 원석이 설사 아름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군주에게는 적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것인데도, 두 왕은 성급하게 ‘화’의 두 발을 잘라버렸다. 그런 다음에야 그 돌이 아주 귀한 보석이란 것을 알게 된다. 보석을 분별하는 것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이다.”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그래서 어렵다는 것일까. ‘화’가 진상한 원석에서 아름다운 구슬을 얻어낸 후, 그 원석이 그냥 돌일 뿐이라 감정했던 전문가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만약 그가 한비가 말하는 법술(法術)이나 중인(重人)라면 문책은 면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비는 “법술(法術)의 사(士)”란,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일과 나쁜 짓을 바로 잡을 역할을 다해야한다고 했다. 한편 “중인(重人)”이란 주군의 명령 없이도 제멋대로 행동하고 사복을 채우면서도, 더하여 군주를 자기편에 끌어드리는 힘을 가진 자로 규정했다.
한비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 군주가 ‘법술’을 대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화씨의 구슬’을 구할 만큼 절실하지는 않는 것 같고, 신하들과 백성의 악을 금단하는 일도 ‘화’를 벌한 것만큼은 엄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원석을 잘못 감정한 ‘법술의 사’가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제왕에게 헌상할 원석을 품고 있을 뿐 아직도 왕에게 바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enoin34@naver.com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