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30여 년이 지난 남자로서, 연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행여라도 아내가 이런 이야기로 서운해 한다면 차라리 이 이야기를 안 꺼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지요. 대체로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만 평생토록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 그러나 남편의 속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 놓을 남자는 없지요. 괜히 자랑 삼아 연인 이야기를 꺼냈다간 평생 책 잡힐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소설 얘기로 상상 가능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내가 꺼내 든 책은 애니타 브루크너의 『달라진 상태 Altered States』(London: Penguin Books, 1997)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앨런은 신중하고 고독을 즐기는 법무관으로서, 육감적인 사촌 새라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매우 신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첫사랑이었던 새라는 외국으로 이사를 가 버리고, 앨런과의 연락도 끊어 버렸습니다. 앨런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새라의 친구 앤젤라와 결혼하지만, 은밀히 새라를 연모합니다. 그는 행여라도 새라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파리에 가 보지만, 그가 상상했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앨런이 집에 없는 동안 앤젤라는 아이를 사산하고 깊은 실의에 빠져 자살을 감행합니다. 앨런은 나애의 죽음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새라에 대한 몽상을 그치지 않습니다.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중년이 되었을 때 앨런은 새라를 다시 만날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때 새라는 아름다움을 잃어 버린 뒤였습니다. 그는 예전의 그녀에게서 느꼈던 매력이 가셔졌음을 알게 되고, 새라도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앨런은 새라를 향한 사랑을 온전히 져버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 친구를 만날 때에도 그는 그녀와는 연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과거의 열정적인 만남에 관한 기억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앤젤라의 죽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실망합니다. 더구나 남편이 자신의 친구였던 새라를 끝까지 못 잊어 하는 것을 보고 허무와 공허 상태에서 자살을 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남자에게는 마음 속에 간직해 놓은 연인이 있는 모양입니다. 남자는 그 연인에 대한 향유를 욕망하면서도, 가정을 지키는 경우가 있는 거지요. 이와 같이 남자는 끝없이 향유의 대상을 연모하고 살아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늙어 죽기까지 연모의 대상과 가정의 아내라는 이중화된 파트너를 몽상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이때 작용하는 것이 남자의 슬기입니다. 남자는 자녀들을 키우는 가정 생활을 하면서 아내에 대한 정도 커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는 때로는 바가지 긁어대는 아내가 밉다가도, 이부자리 속에서는 행복을 나누는 연인 사이로 발전해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궁합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지요. 나이 들어 얼굴이 쭈글쭈글해져도 변치 않는 것은 부부애요, 믿음입니다. 남자는 아내와 멋지게 살아왔다는 자긍심으로 대인 관계도 원만해지는 거구요. 거리를 지나다 보면 서로 다른 얼굴을 한 남녀들이 잘도 어울려 다닌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주님은 저렇게 딱 한 사람만 골라 평생을 같이 살게 하였을까요?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세기> 2:24-25). “둘이 한 몸”이 되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부부입니다. 부부의 관계는 하나님이 인정한 것이지요.
가끔 아내가 나의 배려가 없다고 서운해 할 때면 고스톱을 치자고 합니다. 형제간 모임에서 그 기술을 익혔던 지라 나는 아내의 돈을 딸 기회가 많습니다. 화투의 좋은 짝을 아래쪽에 몰아 놓고 아내한테 패를 떼라고 하면, 스마트폰에서 눈을 데지 못하던 아내는 늘 위쪽만 떼어놓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화투패는 선이 유리하도록 놓아지는 것이지요. 점수가 많이 나는 쌍피 말입니다. 때로는 내가 너무 많이 따도 곤란합니다. 내가 딴 돈으로 군것질을 많이 해서 몸이 부실해진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내가 기분 좋게 잃어 주는 배려도 한답니다. 이제 연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지요. 남자는 마음 속에 연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연인을 마음 속에서 온전히 지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극복의 길이 없지 않습니다. 아내 안에 세상 모든 여인들의 장점을 다 갖다 넣는 겁니다. 그러면 아내가 예뻐 보이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나이 들어 주름살이 늘어가도 변하지 않는 게 부부애인가 봅니다. 앞으로 백이십 세까지 사는 알파 에이지 시대가 된다는데, 부부간에 해로하시기 바랍니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