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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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는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라야 반석위에 집을 세운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과장법이나 강조점을 대할 때에는 오늘의 우리들도 문자적인 것과 상황적인 것에서 고민을 피해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내고 실천함에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완고한 것을 느낄 수 있으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과 관련하여, 율사들이나 서기관들에게서 논쟁과 토론을 거쳐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성격상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나, 사람이 안식일에 숨을 거두는 것과, 아이가 안식일에 태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랍비들이 백성들로부터 질문을 받게 되면, 옹색하게 대답하기를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신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의 논쟁에서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답하였다.
공동번역 마카베오 상 2:27-48에 보면, 안식일에 싸움을 거부한 나머지, 시민들이 몰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항상 지켜오던 안식일 규례와 전통을 재해석하질 않으면, 앞으로는 씨가 남질 않게 되는 결과가 오게 될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래서 이들은 안식일보다는 생명이 우선임을 내세우게 되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안식일에도 적과의 전투에서 맞서 싸우기 시작 하였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과 관련해서 잠언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있고, 산상수훈에서도 강조되어 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옥토에 떨어진 씨의 비유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선조들이 중요시 한 가르침 중에 세 가지는, 미쉬나에도 기록되었듯이,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의무와, 율법 준수와, 적극적인 윤리실천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에게서도 항상 강조하신 바다. 이러한 가르침은 특히 스데반과 같은 일곱 집사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저들이 원시교회에서 제일 먼저 선택되어진 것도 성령도 충만하였지만, 훈련받은 가르침을 지킴에 있어서 탁월한 실천력이 있어서, 회중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탁월하였으나, 당시대의 랍비들의 가르침이나, 전통적인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가르침들이 버터처럼 복음서에 흠뻑 스며들어있는 것은 진리의 보편성 때문이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신의 한수를 배우려는 듯이 질문을 하는 사례들이 수없이 많았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러한 질문 가운데에 몇 개만 추려서 기록하였다. ‘너의 이웃은 누구냐?’ 라는 질문에 선한사마리아사람이 등장 되었듯이,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들이나 레위인들은 모두 전통과 예전에는 숙련되어 있었어도, 실제 삶에서의 윤리적 실천에는 경전의 가르침에 접근하질 못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개신교인들에게서도 신앙 양상이 다르질 않다. 복음서의 책무도 과거의 종교인들의 가르침과 오늘 우리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르고 차별되어지는가에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예수가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쳐 주신, 명백하게 차별화된 신의 한수는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사상을 전달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오직 자기 자신을 떡과 생수로 내어 놓으려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로 가져 왔는데, 그 선물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시다. 여기에 기독교의 해답이 있는 것이다. 예수가 주시는 물을 마시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온 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뜻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풍요하게 하심이다.
한 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네, 저에겐 ‘사랑’이란 단어와 ‘아바 아버지’란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제 마음에 꽉 차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아버지’란 단어와 ‘사랑’이란 단어로 가슴을 가득히 채운 분이라면 그야말로 예수님이실 것이리라. ‘아버지’라는 말과 ‘사랑’이란 말은 실천에서 얻어지는 언어이다. 자기 스스로를 선물로 내어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아버지가 되고, 사랑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이단아라고 매도하던 율사들 중에 하나인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를 찾아뵈었다. 예수께서는 저에게 친절하게 말씀을 건네었다. ‘사람은 위에서부터 출생해야 비로소 하나님나라를 보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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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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