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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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피부는 바짝 말라 있었고, 입가와 눈가에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었습니다. ‘이거, 내 얼굴 맞아? 웬 할아버지가 여기 앉아 있지?’ 보고 또 보아도 분명 내 얼굴이 맞는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지인들이 나의 얼굴에 동안이 남아 있다던 소리를 듣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딸아이가 한 마디 거듭니다. “아빠 솔직히 말해서, 요 몇 년 사이에 아빠 얼굴이 확 늙어 버렸어.”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래방에서 내가 계발한 몸부림춤을 추면 좌중이 웃음 바다로 변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동호외원들 앞에서 노래를 하며 춤을 춰도, 사람들은 웬 주책이냐는 듯, 자기들끼리 얘기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나는 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이대로 내 젊음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왔습니다. K부장이 교내 S 도서관 개관 기념식 때 공연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잘 되었다. 이번 기회에 내 젊음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하였습니다. 노래는 잘 알려진 한명희 시, 장일남 작곡의 ‘비목’을 준비하였습니다. 마침 같은 부서에 있던 여선생이 악보를 구해 피아노 반주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외부에서 유명 인사들도 오는데 더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2절은 여선생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나는 무용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랫만에 춤을 춰 보는데, 청년 시절 지도 교수가 춤을 잘 춘다고 칭찬해 주던 추억까지 떠올랐습니다. K부장도 내 춤을 보더니 괜찮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외부에서 국회의원과 기관장들이 오시니 연습 많이 하세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이렇게 대화도 화끈하게 진행되고, 하던 일도 술술 풀려 학생들 앞에서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 콜롬보>(1971-2003)의 주인공 피터 폴크 흉내를 내 가며 강의도 열정적으로 하였습니다.
2주간의 준비 기간이 훌쩍 지나가고 드디어 개관식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연장에는 국회의원인 안** 선생을 비롯하여 유명 인사들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사회를 보던 K부장이 이정길&#8228;나훈아&#8228;김흥국 등 유명 탈렌트와 가수 들을 배출한 학교여서 개관식에 공연을 준비하였다고 하면서, 노래와 무용을 선보이겠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재단의 실세인 K이사도 무대의 맞은편 정중앙에서 잔뜩 기대를 하며 팔짱을 끼고 서 있었습니다. 나는 유명 성악가 흉내를 내 가며 멋지게 ‘비목’을 불렀습니다. 이제 2절에서는 무용을 할 차례였습니다. 무용 타이즈를 입고 발레화를 신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몸의 가운데가 튀어나오면 꼴불견일 것 같아 와이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준비하였던 한국 무용을 시작하였습니다. 발을 들고 치마를 살짝 집어올리는 부분도 완벽하게 소화하였고, 관객석 아래의 넓은 데로 가서 어깨를 45도 각도로 회전을 하면서 뒤로 두 번씩 스텝을 밟아 뒤로 2미터 가량 물러서는 동작도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장이 무용복이 아니어서 그런지, 안의원은 나의 무용을 보지도 않은 채 옆 사람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고, K이사도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무용이 지속될수록 공연장에 침묵이 잔뜩 흘렀습니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K부장이 재단 이사장실에 들어가 얼굴이 굳어진 채 나와도, 나는 그가 K이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물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대로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K부장은 평교사가 되었고, 나 역시 과장에서 밀려나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명퇴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마무리를 잘 하여야겠다며,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주말이면 퇴직 후에 거할 집필실도 알아 보며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퇴직을 한 달 앞두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의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내가 도서관 개관식 때 와이셔츠 차림으로 무용을 하였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열화같은 성원을 마다 할 수도 없었고, 그들은 인터넷으로 내가 좋아하는 송창식의 ‘고래 사냥’도 틀어 주었습니다. ‘교실에서 강의 시간에 무용이라.’ 나는 학생들을 다독거렸습니다. “애들아. 참아라. 교장 선생님이 지나가시다가 보기라도 하시면 놀라 자빠지실 거다.” “아니예요. 저희가 망 봐 드릴 게요.” 십여 분을 설득하였지만, 도저히 강의가 더 지속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잘 하던 몸부림춤을 선보이기로 하였습니다. 교단을 몇 번이나 도약하면서 몸을 사물놀이 하는 것처럼 흔들어대자, 너무도 신기한 광경에 학생들이 내 주위로 바짝 다가섰습니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오 삼등 삼등 완행 열차 기차를 타고 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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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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