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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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밖에서 교회를 들여다보는 세인들은 교회에 대한 신뢰를 져버린 지 오래이다. 요즈음의 교회는 교회 자체에서도 칭의론을 의심하는 신학이 고개를 드는가 하면, 외형적으로는 교인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내적으로는 신앙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추세임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개 교회에서 실망을 느낀 나머지 좀 더 나은 교회로의 수평이동이 일상화 되었고, 교회에서 교회로 이동하는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교회에 몸담고 있어야 할 뜻마저 잃은 듯, 더 이상 교회에 소속하질 않는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등장하기에 앞서 세례요한이 나타나게 된 동기는, 더 이상 사제들을 신뢰하는 풍토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부의 사제집단이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 쿰란으로 나갔을 뿐 아니라, 이집트로 내려가 새로운 신학을 발전시키고, 시민들을 응집 시켜서 경건생활에 정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치적인 불안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부문에서 심한 피로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요한이 나타나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자, 시민들은 모두 그에게 나가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세례를 받은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항상 시민들을 씻기고 거룩하게 하는 종교 전례와 의식이 항시 치러졌지만, 시민들은 이에 만족하질 못하고, 요단으로 몰려가 요한에게 세례와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사제들은 이와 같은 돌발적 운동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들어나게 세례요한을 박해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그가 군중의 지지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제들과 예수와의 논쟁에서(막 11:30-32), 사제들이 군중들 앞에서 세례요한을 적대시 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타락하고 흔들리면 이렇게 외적으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민을 씻기고 사죄 선포를 하는, 기성 권위와 능력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은 이뿐 아니었다. 예수께서 공공연하게 성전 마당에서, 사제들이 성전제사를 위해서 들고 다니는 기물조차도 금하였고, 환전상들의 상과, 제물을 사고파는 현장을 뒤집어엎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놈들아 너희가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이 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동안에 세우리라(요 2:19; 막 11:16,17)’ 하였기 때문이다.
집을 세우는 자는 감리 감독자 아래에서 설계도대로 바르게 건축해야 한다. 특히 100층을 넘어가는 마천루를 건설할 때에는 더더욱 그리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이 세우고저 하신 교회를 예수님같이 세세하게 모두 들여다 볼 수는 없다할 지라도, 이전에 붕괴한 교회들이 거대한 환란을 겪은 후에 어떻게 수습되어 졌는지를 살펴보면, 그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콘스탄틴 이후 교회는 제도화 되었고, 계급과 권력이 들어섰다. 교회의 입교 절차가 흐려졌고, 국교로 선포되다보니 관리들은 거의 크리스천이 되었고, 국민들 모두가 자연스레 기독교에 들어왔으나 거의 신앙고백과는 무관한 기독인이었다. 공산국가의 종교담당 부처가 기독교를 관리하듯이, 국가 부서에 기독교를 관활 하는 부처가 생겨났고, 하나님나라가 세속 정부의 관할 아래 들어간 것이다. 교회가 성령이 임하시므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제도로써 갖춰진 세속적 종교집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제도권에서 임직식이나 헌당식을 거행할 때면, 으레 성령이 이루셨다는 정도로서 방점을 찍긴 하나, 성령보다는 교회의 제도가 앞서는 것을 바로잡질 못하였다.
예루살렘 성전 붕괴 후에는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유대교도 스마트하게 재정비 되었지만, 교회는 구제도에서 뚜렷이 탈피하였다. 교회가 유대 지경을 넘어서 세계로 나갔으나, 이방인의 종교제도를 모방하지 않은 새로운 교회였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오염되고 잘못되어져 있다면, 굳이 구습과 전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맨 처음의 교회처럼, 기도처 형식으로 단순화 시키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교회는 거의가 권사이거나 장로이다. 유교적 관습에서 직분을 갖는다는 것은 구원이고 권력이며 계급이다. 이 같은 제도에서는 성령이 운행하시는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본질은 매장되고, 하나의 종교단체로 전락된다. 교회가 세속적인 권력과 명예와 이권에 노출된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신도 개개인이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랑의 열매를 맺음에 비효율적이다. 초대교회가 구 교회와는 철저하게 다름으로 차별화 되었듯이, 우리 한국교회가 오백년의 칼뱅 전통이나 백여 년의 구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활로를 개통해야 할 시점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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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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