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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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바로 그게 아닐까 싶다. <리어왕>은 사람을 “안다”는 것이 어떤 일인가를 다룬 연극. 우리가 “안다”하고 말할 때, “안다”가 무엇인지를 여러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서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성서 컨커던스(Concordance)>가 필요불가결의 자료이듯, 셰익스피어 감상자에게는 <셰익스피어 컨커던스>가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에서 “I Know +***”을 뒤질라치면 20개 항을 얻을 수 있다는데, 모두가 <리어왕>에서 얻을 수 있다니, 그래서들 <리어왕>이 “사람을 알게 하는” 연극이라 말하는지도 모른다.      
작품은 두 부자관계, 리어왕과 세 딸(고너릴, 리건, 코디리어) 및 그로스터와 두 아들(에드거, 에드먼드)를 그리고 있는데, 양쪽 부친이 모두 자식에게 배신당한다. 한 쪽은 정신이상, 다른 쪽은 고문으로 실명하는데, 고유명사가 주어진 등장인물 14명 중 8명이 비명으로 죽게 되는 <리어왕>은 곧 “안다”가 잘못됨에서 오는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감상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들자면,  “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너의 이름은 글로스터”(I Know thee well enough, thy name is Gloucester)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리어왕은 믿었던 두 딸에게 배신당한다. 그것은 리어가 세 딸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 여든을 넘긴 리어왕이 “왕국을 셋으로 나누어, 애비를 가장 생각하는 딸에게 큰 선물로 주겠다.” 하고 나선자,  장녀 고너릴이 “아버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둘 째 리건도 비슷한 말을 토해낸다. 그러나 셋째 코디리어는 아버지에 대한 사려가 깊은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자, 화가 치민 아비는 막내를 추방해 버린다. 이를 만류하는 충신 켄트백작마저도... <리어왕>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왕은 두 딸의 입에 발린 말만 곧이듣고 속내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막내의 진정어린 말뜻에 대해서는 알아보려하지도 않았다. 
아첨과 과장 덕택으로 많은 영토를 차지한 두 자매와 빈손이 된 막내가 이별하는 장면에서, 막내가 언니들에게 말한다. “I Know you what are you”하고. 언니들의 정체, 미사여구로 늙은 아버지를 호리는 두 언니의 본성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일까. 그리고 이 대사가 연극 전체의 프로세스를 예고한다.
막내 코디리어가 사라지자, 둘 째 리건이 아비에 대해서 말한다. “He hath ever but slenderly known himself(자신에게 대해서는 조금도 아시지 못했지)”하고. “안다”고 하는 말은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도 포함한다는 뜻일까.  
4막7장 리어가 추방한 막내와 재회하는 장면에는 추방당했던 충신 켄트가 함께 한다. 딸이 아비에게 묻는다. “Sir do you know me?” 이미 제정신이 아닌 리어는 “영혼이로군. 알고 있지. 어디서 죽었지?” 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그대도 이 사나이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하고 말한다. 이렇게도 서글픈 모습이 되고서야 그나마 충신과 막내딸 그리고 아버지는 서로의 진정성을 이해하게 되다니.
5막에서는 “I Know...”라는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남편을 잃은 리건과 아직 남편이 있는 고네르리의 사이가 험악해져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너댓의 인물이 죽어가는 장면이 대신 비극의 동기를 일깨워준다.   
작품 중 최고의 악당 에드먼드는 첫째와 둘째 모두와 정을 통한다. 이 삼각관계로 해서 첫째는 둘째를 독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에드먼드도 죽고. 한편 리어왕과 막내는 브리튼군의 포로가 되는데, 에드먼드의 지령으로 막내가 교살 당하자, 딸의 유해를 안은 리어가 절규한다. “왜 너는 숨을 쉬지 않지? 이젠  돌아오지 않으리. 다시는, 다시는,...다시는...” 그리고 절명한다. 장송곡이 울리고...
올해가 셰익스피어(1564-1616)서거 400주년. 4대 비극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리어왕>을 더듬으면서 좀 더 자상하게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주인공 리어왕의 마지막 절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면 그나마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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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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