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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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남 신안주 태생
길자연(吉自然 1941.4.19~ ) 목사는 평안남도 신안주(新安州)에서 믿음 좋은 장로 아버지와 권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년 길자연의 부모는 평소 장로와 권사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실천적인 삶으로 보여주신 삶이었다.
당시 신안주교회(1905.11.3 설립)에는 한국교회 순교자 명단에도 들어있는 최원초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고, 최 목사의 영성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광복 직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한 길자연은 동대문 가까이에 있는 동도교회(東都敎會)에서 최훈 목사를 만났고, 그로부터 많은 영적감화를 받았다. 최훈 목사 역시 기도의 사람이요 성경을 손에서 떼는 법이 없는 성실하고 근면한 목회자였다. 이 분을 통해 ‘목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하는 것을 배웠다.
길자연은 기독교계통의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학과로 진학해 한의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선친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수련을 쌓기 시작했고,  졸업하던 그 해 10월에 대학생 시절에  만난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잠시 지금의 고양 땅이 된 금촌으로 분가 해 나가 한의원을 개업했으나 손님이 오지 않았고,  금촌 용주골에 정착 10개월만에 옆동네인 주내로 병원을 옮겨 재개업을 했으나 운영의 어려움은 여전하였다.
이러한 때 파주에서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그 동네의 작은 교회를 섬기게 되었는데 주일학교엔 부장도 교사도 없었다.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일학교 부장과 전도사 역할도 하며 인근교회에 교사를 파송해 돕기에 이르자 주위에 있는 기존 교회들이 오히려 의아해 하였다.
이곳에서 길자연 청년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발견하게 되었고 느슨했던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게 된다. 이 무렵 성령충만을 다시 체험하게 되어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여기 이대로 있어서 안되겠다 싶어 신학공부를 해야겠다고 결단했다.  
만 29세가 되던 해 칼빈신학교(현 칼빈대학교 전신) 야간부에 학사편입을 했다. 낮에는 아버지를 도우며 한의사 생활을 하며 야간이면 학교로 달려가 장차 전도자의 훈련을 받았다. 

한의사 개업 중 소명의식 느껴 신학공부
동도교회서 최훈 목사 지도받아 기도에 열중
신림동에 교회 세워 오늘의 왕성교회로
왕성교회 부흥 요소는 ‘금요철야기도회’
한기총 대표회장 등 교계연합과 일치에도 기여

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신·구약 성경을 마음 먹고 정독을 하였는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머리에 꽝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때부터 성경읽을 때 맥이 통하는 것이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신약성서 내용이 보이고, 신약을 읽으면 구약의 메세지가 보였다.
어느날 동도교회 최훈 목사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줄태니 7,8년 공부해 학위를 받아 와서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나…” 이 제의를 받고서 신바람이 나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부 교사로 사역에 전념했다.
드디어 1973년 2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3월 2일부터 지금의 워커힐 뒷동산에 조그만한 기도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6개월동안 기도했다. 그때 그 기도원에서 한국신학의 태두(泰斗)인  정암 박윤선 목사가 함께 있었다.
서울 관악구 봉신교회 교역자로 신개척이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에 부임,  전도자로 출발했다. 성도라야 40여명이었는데 남자 성도 겨우 4명, 그것도 모두 무직자였으니 교회 형편을 알만하지 않은가?
봉신교회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어린 딸을 하늘 나라로 보내는 아픔이 있었고, 교회는 어려워 기도하며 말씀을 전했으나 부흥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즈음 신림동과 봉천동이 분동(分洞)되어 교회 이름이 어울리지 않아 한가람교회라고 바꾸었는데, 사람들이 또 이단교회라고 비아냥거려 신림동교회라고 다시 교회명을 바꾸었다. 신림동교회가 오늘의 왕성교회(旺成敎會)가 된 것이다.
왕성(旺成)이란 이름도 사도행전(6장7절)에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말씀에 근거해 작명(作名)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세는 여전히 어려워 자립은 요원해 보였다. 이때 12시간 비상기도를 하게 된다.
전체 성도 40명 중 29명의 제직(집사)을 세웠으나 교회봉사에 희생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직분이라도 맡으면 열심히 봉사하기를 기대했으나 그것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왕성교회에 부임하면서 마음에 결심한 목회비젼과 목회철학 3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당시 교회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는 절간(사실은 굿집이었다)이 없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노력한다. 둘째 당시 동숭동의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이전하며 교회 앞으로 대로가 나는데 여기에 한국 최고의 지성들을 움직이는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교회로 부흥시킨다. 셋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목회를 하기로 결심하고 교인들 앞에 함께 기도하고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길자연 목사 기도목회 이야기, 길자연 저, 생명의말씀사 2004 서울초판  p.1~31 참조).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되어 가며 부흥과 발전의 계기가 마련되자 본격적인 목회사역의 불길이 붙었다. 왕성교회 부흥 요소 가운데 하나는 길 목사가 계획하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금요철야기도회’라 여겨진다.
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철야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니 기도에 불이 붙게 되고 불이 붙다보니  습관이 생기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때 생긴 철야기도는 30년이 넘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는 곧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다섯 사람 정도  예배당에 나와 금식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금식기도팀까지 생기기도 하였다.
왕성교회는 교회 뒤에 있는 절간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왕성교회가 힘을 합쳐 기도한지 6년 2개월만에 절간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까지 왕성교회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기도의 결과였다.
길 목사가 왕성교회에 부임한 후 예배당 건물을 두 차례 건축하였다. 처음 28평짜리 교회를 헐고 132평 짜리 교회로 지었고, 부임 후 8년만에 600평의 대지 위에 오늘의  왕성교회로 발돋음했다. 왕성교회는 예장 전국총회가 모일 수 있을 정도로 큰 교회로 성장 발전하였고, 길자연 목사는 교정(敎政)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자기교회만 아니라 왕성교회가 속한 평양교회 노회장과 기독교문화선교회 이사장(1984.12)을 비롯, 총신대학교 이사(1995.10~1000.11),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3회 총회장(1998.9), 1999년 10월엔 한국교회를 위한 영성목회연구회를 조직 총재에 취임하였고,  2000년 1월에는 한기총 부설 통일선교대학장, 같은 해 3월 한국항공선교회 이사장, 같은 해 9월엔 총신대학교 운영이사장이 되었고, 2003년 1월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피선(12대,17대 2회 역임)되어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하여서 그의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2006년 12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이사장, 2007년 1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이사장으로 2007년 12월 칼빈대학교 총장, 2013년 12월엔 교단인재양성의 산실인 총신대학교 제5대 총장에 취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가 재임했던 제83회 총회 중요 결의안을 보면, ① 지금까지 시행해왔던 총회주일헌금을 세례교인 의무금으로 변경하다. ② 은급기금 미가입교회는 총회에서 발행하는 제증명 발급을 중지하기로 하다. ③ 총회 산하 선교부를 폐지하고 ‘총회세계선교회’로 개편하기로 하다. ④ 교계에 문제되고 있는 ‘말씀보존학회 대표 이송오’를 이단으로 규정하다. ⑤ 외국인근로자선교협의회에서 봉사하는 목사를 선교사로 인정하기로 하다. ⑥ 총신대학교 대학원 안에 교회전문사역과정을 신설하기로 하다. ⑦ 여성안수(목사직과 장로직)는 불가하며, 단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하며 지도력을 적극 개발하기로 하다. ⑧ 사순절을 성경적 절기로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 연구키로 하다.
길자연 목사는 왕성교회 원로목사(2012.12.27 추대)를 끝으로 목회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한국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용인시에 한국교회 영성훈련원을 설립 한국교회 미래를 위한 지도자 훈련에 매진하며 여생을 바치고 있다. 그가 섬기던 왕성교회는 그이 아들 길요나 목사가 대를 이어 목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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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83회 총회장 길자연(吉自然)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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