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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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완벽하게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라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창조하신 뜻대로 역사하시기에 창조함을 받은 생명은 그 모든 삶이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개인과 국가와 일류를 통치하시며 섭리하신 “하나님의 시간”안에서 그 삶이 영위(營爲)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공익성(公益性), 독립성, 영원성, 통일성, 불변성을 알게 함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섭리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모든 생명은 그 앞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그리고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크게 볼 때 동일하다. 이는 모든 생명들의 삶이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인간들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변함없으시기에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에 따라 종말을 향해서 진행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시간”으로 삶을 산다.
시편 본문에서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 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지금 있는 것 이미 있는 것이고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일을 되풀이하신다.”
이렇게 하나님은 통치하심과 섭리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범사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끊임이 없으시기에 믿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세상에 잠시 왔다가 가지만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에 따라 종말을 향해 진행되고 심판을 깨닫고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심판과 종말을 대비하면서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삶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본문12절의 말씀인 여기서 우리는 우선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이다. 여기에 성서가 가르쳐 준 말씀에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예컨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또한 여기에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 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고 함에 주의를 가진다.
여기서 “때”라는 의미는 ① 시간의 어떤 점이나 부분을 말하고, ② 좋은 기회나 운수, 알맞은 시기, ③ 끼니 또는 끼니를 먹는 시간, ④ 어떤 경우, ⑤ 시대, 연대, 그 당시 등을 말하며 시간의 세 얼굴로 ‘시간’ ‘때’ ‘시제’를 말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삶에서 갖는 유일하게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정한 일정한 길이의 그 동안을 시간이라 한다.
또 철학에서 시간이해는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머무름이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옮아간다고 생각 되는 것, 공간과 더불어 인식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을 말한다. 하루의 24분의 1을 한 시간으로 하는 ‘동안’의 단위를 알게 한다.
“시간”의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세상에는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고대인들은 이미 시간이 상대적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시간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흐르는 연속한 시간을 표현하며 ‘카이로스’ 시간은 일순간이나 인간의 주관적 시간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이라 한다면 카이로스시간은 일순간이나 인간의 주관적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진다. 크로노스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 시간은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은 비록 '찰라'일지라도 구체적 사건 속에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시간을 가리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의 의미로 카이로스 시간인 “하나님의 시간”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된다. 바울 사도도 여기에 그 의미를 두고 고후 6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헤어 보면서 ‘카이로스’ 시간으로 이런 삶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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