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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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가 밝았다. 한국 개신교는 다양한 행사 준비로 어느 해보다 바쁜 한 해가 될 것에 틀림없다. 다채로운 행사의 정점에는 종교개혁 정신의 재조명에 종교적 역량이 집중되어 있다. 종교학자로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종교개혁’이라면 당시 비텐베르크대학 신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 교황청이 베드로성당의 수리비 충당을 위해 판매한 면죄부에 항의하여 1517년 95개조의 의견서를 발표한 사건에서 촉발되어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혁되어 온 다양한 종교 사회문화적 현상의 확대된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개혁은 영어로 ‘reformation’이지만, 가톨릭 개혁만이 아닌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포함한 중세 유럽 사회 전체의 큰 변혁의 물결을 끌어 낸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Reformation’으로 쓰며, 우리는 종교개혁이라고 관용적으로 사용한다.  
필자는 종교개혁의 세 가지 단상의 주제로 ‘단상1) 기복신앙과 맘몬신앙을 탈피하여 풍류신앙의 실천적 개혁의 원년, 단상2) 헬레니즘의 격의적 성경해석을 포월한 다종교적 전통을 회통한 새로운 성경해석의 원년, 단상3) 유럽 가톨릭 개혁 500주년에서 진정한 지구촌 종교개혁의 원년’이라는 소제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기복신앙과 맘몬신앙 등 의타신앙을 탈피하여 한국적 풍류신앙 실천의 원년으로    
개신교가 전래한 이래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짧은 역사임에도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더구나 세계 최대의 신자를 가진 단일 교단, 신자의 양적 신장률, 그리고 종교인구 대비 기독교 신자의 비율은 한국 개신교가 세계 기독교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할 만한 양적 지표임이 틀림없다, 반면에 한국 교계에 만연하고 있는 기복신앙과 맘몬신앙은 양식있는 종교인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정적인 종교적 현상이다.
종교개혁이 새로운 성경해석과 실천적 전통의 바탕위에 세워져야 한다면 우리는 예수와 사도들의 종교적 행적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종교의 기초석은 고난과 희생의 터 위에서 세워진 살신성인의 행위의 탑이지 결코 사익을 취하는 기복의 바벨탑이 아니다. 더구나 ‘예수의 몸 된 교회’를 일부 직업종교인이 매매하고 세습하는 행태는 스스로 종교적 타락을 실증하는 징표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상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왜 이런 어두운 현상이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되었는가? 이는 낡은 중세시대 정신을 고발하고 저항(protest)하는 프로테스탄트의 본래 정신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괴리된 사회적 현상과 타협하며 자기 삶의 좌표를 정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정한 세속의 자본과 권력과 명예를 떨치고 광야의 삼대시험을 이겨낸 ‘구세주’이며, 죽은 후 사망까지도 극복한 우주적 그리스도로 신앙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상실한 무늬만 신자인 그리스도인, 희생과 사랑이 결핍된 예수 팬들이 일요일마다 교회당에서 직업종교인의 설교를 들으며, 하나님에게 찬양과 찬송을 올리지만, 사회적 공간에서는 비(非)그리스도교인과 같은 속세적 원리로 살아간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온 본질적 의미가 무엇이며, 교황중심의 가톨릭의 틀을 깨고 나온 개신교의 종교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현재적 시점에서 되물어보아야 한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Deo Gloria)”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한국교회가 계승한 구호라면 이 구호 자체를 다시 한 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되돌아가 되새김해 보아야 한다. 전통은 창조적으로 계승되어 정통이 되어야 하며, 고답적이고 고식적으로 신앙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행위적 실천은 도외시 하지 않았는가?
‘오직 성경’이라고 하면서 한국교회현상이 정말 성경적인가?
‘오직 은혜’라고 하면서 기복적이며 맘몬적인 세속적 현상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직업종교인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대리영광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 대답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올바르게 승계하지 못한 비성경적인 교회현상이라면 그 근본원인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한국의 종교적 심성을 잃어버린 것 때문이 아닌가? 우리에게 흐르는 조화롭고 상생하는 종교적 포용성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우리의 종교적 역사에는 외래종교를 창조적으로 포용하는 풍류(風流)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즉, 서구신학의 전통을 교조적으로 답습하는 것을 탈피하여 ‘기독교의 고운(孤雲), 기독교의 원효, 기독교의 퇴계와 율곡’을 찾아야 한다. 한국의 종교적 도맥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풍류정신을 발현하여야 한다.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연원을 둔 풍류는 이미 동아시아의 이상적인 인간상인 신선의 역사를 기록한 선서(仙書)로 현대적 의미의 영성적 인간(Homo Spiritualis)을 조명하고 있으며, 유·불·도의 종교적 종지를 회통하고 융합하여 새롭게 경전을 해석해 내는 인식론적 체계를 담고 있으며,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자율적이며 자발적인 실천적 사회운동을 담지하는 신행일치의 규범이 우리 종교문화의 전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외래종교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기층에 자리 잡고 있는 풍류의 신앙과 조화를 이룰 때 새로운 종교문화를 창조한 것이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흐르는 맥이라 할 수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은 단지 마르틴 루터를 기념하고 그 종교개혁의 길을 답사하며, 서구 신학자와 그 교리를 조명하는 학술행사와 기념주화를 발행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 개신교의 역사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을 발굴하여 조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구촌의 사유체계가 합류하며, 종교와 과학이 대화하는 시점에 진정한 종교개혁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진정한 회개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 죽은 인물을 기념하는 행사가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정신으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며 기복신앙과 맘몬신앙에 젖어있는 타성적 믿음을 깨고 풍류의 혼으로 깬 풍류체가 되어 사회 구석을 밝히는 참다운 종교로 거듭나는 원년(元年)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를 위해 다 경전적 전통의 한국 종교문화의 맥락을 성경의 바탕에서 재해석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실천적 행동을 선보이는 진정한 인격의 발굴과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의 행사이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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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종교학자가 본 ‘종교개혁 500주년’에 대한 단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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