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서 손뼉을 치는 사나이 자신도 코끼리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치는 손뼉의 효과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주술 행위의 효능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작 뒤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강압관념이나 망상 혹은 예언의 터전을 끌어안고 있으려는 노림수에 다름 아니다. 손뼉을 치지 않는다면 나타나지 않을 코끼리를 손뼉을 침으로써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귀를 막는다. 바츨라비크 왈: “스스로 희생자라 생각하고 발버둥 치면서도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자신에게 죄를 범하는 셈이다.”
그리스 신화도 “신화가 인간을 그 속에 가두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저주성 주술”이 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만 해도 그렇다.
이야기는 디바이 왕 라이오스가 신탁을 받는데서 시작된다. “그대의 아들은 자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미를 범할 것이다.” 왕은 양치기를 시켜 핏덩이(오이디푸스)를 키타이론 산 속에 버리고 오라고 명한다. 양치기는 키타이론에 가긴 했어도 아기를 지나가는 다른 양치기에게 넘겨주고 돌아온다.
아기를 넘겨받은 양치기는 아기를 가질 수 없어 애태우고 있는 코린토스와 포리포스에게 아기를 맡겼기에,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로 자란다. 어느 연회에서 “저 녀석은 포리포스의 자식이 아니야”하는 쑥덕거림을 듣게 되자 불안해진 오이디푸스는 신탁으로 진위를 가려보려 해보지만, 무녀들은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어울린다.”만을 되풀이할 뿐.
신탁이 두려워진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를 벗어나 포키스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사나이와 대수롭지 않는 일로 다투다가 죽여 버린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사나이야말로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주인공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그네가 된 오이디푸스는 그의 고향 디바이로 가는데,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서 스핑크스를 물리친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발, 밤에는 세발”은 곧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말이다. 그 공로로 디바이의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과부인 이오카스테와 혼인한다. 그녀가 바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
시간이 흘러 디바이는 큰 재앙을 만난다. 땅이 메마르고 가축이 죽고 사람이 역병에 시달린다. “모든 재앙은 선왕(라이오스)을 죽인 사나이가 디바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란 신탁이 내리고.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내려 애쓴 끝에, 자신이 살인자란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자결한다.
만약에 오이디푸스가 무녀를 매수해서 자신과 조국에 덕이 될 신탁을 말하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함대가 아테네를 위협하고 있을 때, 그리스 의회는 적극적으로 방어할 것인지, 소극적으로 대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적극파 데미스토클래스가 무녀를 매수해서, 먼저 그리스의 패배를 예언하는 불길한 신탁으로 의회를 공포분위기에 휩싸이게 한 후, 곧 “나무 벽을 세워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신탁을 얻어낸다. “나무 벽”은 “선단”이란 해석을 덧붙여 의회의 분위기를 적극항쟁 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데미스토클래스는 사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크게 무찔렀다.
오늘날에도 “10초마다 손뼉을 치는 사나이”는 기이한 그의 몸동작으로 있지도 않는 코끼리를 움직이고 있다며 민중들을 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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