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들>에 등장하는 혁명가들에 대해서 위에 인용하고 있는 <복음서>의 기사를 밑에 깔아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다만 “귀신들”이 “악령”혹은 <악령들>로 바뀐 것은 일본번역의 영향 때문이거나 역자들의 취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는 1869년 러시아의 한 지방도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전직 대학교수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는 부유한 지주의 미망인 바르바라 페트로브나 스타브로긴의 저택에 머물러 있다. 부인의 외아들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이 어렸을 적에 가정교사로 들어왔으나 니코라이가 성장해서 도시로 간 이후로는 전제군주적인 성격의 바르바라 부인의 페트가 되어 세월을 보내고 있는 터였다.
이 초로의 지식인은 후한 가정교사의 사례금 때문에 지방 도시로 왔고, 그 덕으로 지금은 술이나 마시고 내기 카드놀이에 찌들어 지내게 되었으면서도, 자신은 진보적인 사상가였기에 학계에서 밀려나 수난을 당하고 있노라 포즈를 취하며 우쭐대고 있었다.
이 공허한 나르시시스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아들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는 아비의 모습에 신물이 났던 것일까, 표트르는 어엿한 혁명가가 되어 스위스에서 돌아온다. 다섯으로 구성된 비밀결사를 조직해서 혁명정부수립을 꽤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영글어간다.
때맞추어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이 스위스에서 돌아오는데, 둘은 어렸을 때 가정교사와 아비인 스테판 베르호벤스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을 신처럼 떠받들며 혁명이 성사되는 날 그를 한 나라의 지도자로 모실 것이란 신념을 굳혀가고 있는데......
표트르, 비밀결사를 통해서 거짓선동과 방화 등으로 민중의 불안을 부추기며 소동을 조장해서 지배 권력을 넘어뜨리려 계획하고 있는 표트르는, 그러나 이제 철저하게 아비를 멸시하고 미워하게 된다.
여기에 지난날 스타브로긴 집안의 농노의 아들 샤토프가 끼어든다. 그도 이 집안의 도련님인 니코라이 스타브로긴과 귀족의 딸 리자베타 곁에서 사이비 이상주의자 스테판 스타브로긴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대학에서는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표트르 베르혼스키의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전향해서 지금은 “러시아 국민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러시아 메시아니즘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샤토프의 친구 킬리로프는 기술자이면서도 일종의 무신론자가 되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인간이 죽음의 공포만 극복한다면 신과 같은 ‘인신(人神)’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망상이 그를 따라다니고.
이들 모두의 생각은 그들이 어렸을 때, 가정교사 니코라이 스타브로긴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정작 그들을 그렇게 가르친 당자 니코라이는 어느 쪽도 믿지 않고 있지만, 샤토프와 키리로프는 가르침을 따라 열광적으로 니코라이를 받들어 그가 언젠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잠잠했던 이 지방도시에 차례로 끔찍한 사건들이 줄을 잇게 되는데, 표트르는 전향한 샤토프가 경찰에 비밀조직을 밀고할 염려가 있다며 조직의 일원을 부추겨 지난날의 동지 사토프를 밤중에 공원으로 유인해서 살해하게 한다. 거기에는 조직의 멤버를 살인 공모자로 만들어서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었고.
한편 표트르는 “인신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살한 킬리로프를 샤토프를 죽인 범인으로 꾸며낸다. 또 그는 탈옥수 페치카를 종용해서 스타브로긴의 비밀의 처 마리아와 그의 오빠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게 한다. 이어지는 살인과 방화로 도시가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표트르는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리고 악령들의 우러름을 받아오던 스타브로긴은 아무 것도 이루어 놓는 일 없이 목매어 자살한다.
<악령들>에서 스테판 베르호벤스키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없는 <악령들>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enoin34@naver.com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