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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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미드라쉬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눈 성소의 휘장을 1m 간격으로 휘장을 겹으로 드리워서, 지성소로 제사장이 들어갈 바깥입구를 남쪽에 만들어 놓고, 휘장 통로를 지나서, 북쪽에 닿으면, 지성소로 들어가도록 지성소의 휘장을 열어 놓았다. 아마도 처음에는 휘장이 하나일 것으로 설명되다가,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 오늘까지, 한 번도 제사를 드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랍비들이 모여서 매일 같이 토론을 하다가 만들어진 궁여지책으로 나온 설명으로 보인다.
하스모니안 가의 한 랍비는 필자에게 설명하기를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 휘장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환대를 받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휘장 안으로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 랍비의 설명이 더욱 경전의 전통과 일치되는 것은, 지성소 안에는 본시 등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빛이시기에 물리적인 방법으로 밝힐 수 있는 도구가 없는 터이었다. 오로지 사면이 막혀있는 방에 율법 궤와 그 위에 속죄소만이 있어서, 사제가 지성소 안에 있는 동안에는 이 세상의 물리적인 빛은 없이, 영광 가운데에 계신 야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있게 되는 것이다.
랍비들이 성전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시민들에게 공공연하게 주장하여온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제단위에 제물을 올려놓으면 그 제물 위로 파리가 달려들질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제물에 불을 붙여야하는 제단의 불에는 비가 오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제단의 불 또한 화력이 다른 불들과는 달라서 제물들이 깨끗이 살라졌으며, 셋째, 제물들이 단위에서 불과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리는 동안에는 바람의 방해가 없이, 곧바로 그 연기가 하늘로 올려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소에서는 떡 상에 진열된 떡도 항시 신선도가 유지되어, 한주 후에 새로운 떡을 올리기 까지는 금방 구워낸 음식 같아서 사제들이 먹는 데에 신선한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성소에서는 속죄소 위에 천사 두 분이 마주보고 날개를 펴서 법궤를 드리우고 있는데, 백성들이 야훼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진노하시게 되면, 서로 마주보며 율법을 읽고 계시듯 하던 얼굴이 서로 마주하질 못하고 다른 곳을 향하였다는 것이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속죄일이 되면, 미리 한주 전부터 성전에 올라와서 자신을 성결하게 관리하였는데, 혹시 첫 번째 사제가 지성소에 들어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자가 열 분까지도 있었다 하니, 이렇게 자신을 성별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니, 제단의 불이며, 떡상위의 열두 덩이 떡들이며, 어느 하나라도 소홀이 되어 진 바가 없었다면, 야훼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들을 만나실 채비를 단단히 하시질 않았겠는가?
성소 바깥에서부터 온 땅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날이 되면, 어린아이까지 하루 종일 금식과 성찰은 물론이며, 속죄의 제물로 준비된 양들이며, 제사에 참여하려는 참배객들이 얼마나 많이 예루살렘에 들어오던지, 요아힘 예레미아스의 견해대로는 사람들이 몸을 돌릴 수조차도 어려웠다고 하였는데, 성전 가까이에서도 사람들이 얼마나 붐볐던지 창끝으로도 틈을 뚫을 수 없을 만큼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엎드리어 경배를 드릴 때에는 공간이 넉넉하여 졌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는 어린아이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들로 성전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해내려 오는 성전이야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과 명절들과 유월절이나 속죄일을 직접 보고 참여하며 경험한다면 공감을 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여 불러내시고 성별하셨다는 사실이 매일 매일 현실이 되어서, 자신을 불러내신 하나님 앞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고, 하나님을 항하여 반듯하게 서서 나아가는 것이 나날의 생활이 된다면, 그 열매 또한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들의 종교와 삶이 하나가 되어서 나타나는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노벨상을 타는 이들의 점유율이 30%에 머물러 있고, 자신의 동족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들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돈이 없어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가 없고, 학비가 모자라서 학업을 포기하는 자가 없으며, 지속적으로 가난한 자가 없다는 것이리라. 저들이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함에 있어서 미련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 외에는, ‘거룩’을 내걸고 행진하는 우리로서는 모두 본받아야 할 것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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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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