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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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누가에게 고마운 것은, 그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과 행전에서 저는 교회의 주도권을 성령께 양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에 따라서 호흡을 맞추어 나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천국복음과 사역, 바통을 이어받은 제자들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복음과 사역을 그가 기록한 덕에, 성령께서 무엇을 어떻게 역사하시며, 그의 교회를 세워갈 수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가는 히브리적인 문화와 율법적인 교회를, 헬라적인 문화와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회로 건설할 수 있었음이 오직 성령의 권능과 역동적인 사역에서 비롯되었음을 증거 하였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그가 율법적인 제도와 전통에 갇혀서 주검 가운데 있던 유대적인 교회를, 그리스도론적이며 성령론적인 교회로 헬라문명에 컨버전 할 수 있었던 비결과 지혜를 보여준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을 역동적으로 이끌고 가시는 분이 성령이셨듯이, 누가복음에서도 역시 예수를 광야로 인도하고 갈릴리로 인도하고 계신 분이 성령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이긴 해도, 만일 누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성령의 부어주심과 오심으로 인해서 비로소 건설되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교회, 물이 샘솟아서 광야를 적시는 이야기는 에스겔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은 누가에게서 이다.
에스겔서에서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주검 가운데에 있는 해골들이다. 그런데 이 해골들이 서로 연결되어 골격을 이루고 군대가 되어서 잃었던 도성을 되찾고, 더럽혀진 땅의 수치를 벗겨주고, 다시 거룩한 도성을 세우게 되는데, 이와 같은 역사는 오로지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데, 이 새로운 교회는 성령의 바람과 복음의 선포로 그 기원이 열리는 것이다. 예전만 있었던 정적인 교회가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광야에 강줄기를 대고, 어부들이 살게 되는 세상이 현실화 되는데, 누가의 사역 현장에서 비로소 이뤄지기 시작 한 것이었다.
누가행전에서 성령은 형식과 규례에 얽매이지 않으신다. 성령이 임하시고 운행하시기 시작 하신 곳은, 성소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였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하늘에 좌정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부어지신 것이다.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께서 임하시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불에 타나 살라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라는 사람도 거룩하게 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렇게 되자 노예민은 자유민이 되어 거룩한 민족으로 태동된다. 마가의 집 이층에 모인 120여명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예수교회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역사가 사도들에 의해서 다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자, 성령께서는 스데반이나 빌립집사를 체인지업 하여서 복음의 동력에 원심력을 갖게 하신다. 어디 그뿐이랴. 생각 밖의 율법학자에게 성령이 부어지시니, 저가 온 헬라세계를 휘젓고 다니면서 교회를 확장한 것이었다.
교회란 제도적인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결코 사제나 목사가 아니다. 성령이 교회로 교회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침체를 어떻게 벗어나고, 다시 새롭게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 이는 누가에게 해답이 있지 않을까? 예루살렘 교회가 지역에 한정되어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 예루살렘 바깥 해변의 무두장이네 집에 묵고 있던 베드로에게 성령이 찾아 오셨다. 베드로는 레위기서의 정결 규례에 묶이어서 바깥세상으로 복음을 흘려보내질 못하고 있던 터이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베드로에게서 복음이 외부로 흘러가는 것은 불가해 보였다. 그러나 누가는 임신된 마리아를 요셉에게로 데려올 때에 천사의 조력이 있었듯이, 여기서도 역시 하나님 사자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너는 더럽다고 하는가?’라는 논쟁이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이란 그의 친구들과 노비들도 모두 포함된 이방세계임을 시사한다. 베드로가 마지못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그 집에 내려오시는 것이었다. 성령은 교회나 지도자들에게 길들이시질 않으신다. 누가가 선포했듯이, 우리가 성령께 민감하려면, 그가 선포한 ‘너희 각 사람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한 바대로, 필히 해야 할 일은 회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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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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