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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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우리 땅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느낀 점들을 미국에 보낸 서신들을 보면, 제임스 스카스 게일의 ‘코리아 인 트랜지션’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지식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아마도 이는 유교에 영향을 받아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등의 슬로건이 생긴 것 같다. 그도 그렇듯이 적어도 과거에 합격해서 공무원 초급인 ‘진사’ 정도는 받아나야 양반 행세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인들은 세종이 한글을 창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한글로 번역하질 아니하고, 한문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글과 지식을 특별 계급만이 독점하여 온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형편에서 나라가 기울고 일제에 국가를 찬탈 당하였으나, 선교사들은 성경과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권서인(勸書人)들로 보급하고, 교회에서는 앞장서서 한글을 가르쳤다. 이러한 영향은 영국교회에서 내려오는 흐름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에서도 틴데일을 비롯해 위클리프 등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으나, 귀족에게 마저도 보급되질 못하도록 읽는 것을 금하였고, 읽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렸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영어가 보급된다든지, 성경의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영국에 부흥이 일어나면서, 휫휠드나 웨슬레가 교회당 바깥에서 설교 집회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와 설교를 듣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교회당은 대체로 특별한 직에 있는 이들의 가족들마저도, 예배당이 좁아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오늘의 교황이 광장에 모인 신도들에게 창문 테라스에서 몇 마디 하는 것은 예배당에 들어오질 못하는 이들에게 그나마 서비스하는 요식행위이다.
그런데 과감하게도 상식을 깨뜨리고 야외천막에서 설교가 서비스되다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성경 말씀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섹스피어 시대에는 국민들이 글은 몰라도 도시마다 3000-5000석의 극장들이 세워 졌는데, 연극을 듣기 위해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글을 모른 터이라서 연극에서 주고받는 대사를 듣고서야 ‘자유와 책임’에 관한 지식을 넓힐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기위해 극장으로 간 것이라기보다는 듣기 위해서 극장에 모였는데, 매번 일 년에 여러 편의 섹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되었기에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도록 해주는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조지 휫휠드와 요한 웨슬레는 모여오는 군중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히기 위해서 당시 방치된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을 설립하고, 학교를 세우면서 글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오늘 날의 초등(국민)학교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교회와 교회당 옆에 고아원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세웠는데, 이로 인해서 지식이 서민들에게 이동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즈음에는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거의 신학문을 접한 서민 출신들이었다. 우리 국민에게 한글이 전체적으로 보급된 것은 오로지 교회에서 세운 성경학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글 학자가 세종 이후에 찾아 볼 수 없다가, 선교사들이 한글을 자국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한글 문법책이 보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글학자들이 비로소 나오게 됨은, 역사학자들이나 교육을 하는 이들이 여태껏 숨겨온 부끄러운 이야기들이다.
이 땅에 한글과 성경이 보급됨으로서 새롭고도 스마트한 문명을 이룩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앞선 민족이 있는데, 저들은 다름 아닌 유대민족이다. 저들은 태어나자마자 모국어를 어머니의 무릎에서 자국어와 글을 습득하고, 자신들의 경전인 모세 오경을 3살이 되기 이전부터 외워서, 그들이 사는 나라가 어느 땅이든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시민이기에 앞서서, 하나님나라시민으로서의 기반을 이미 갖추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모세로 자유를 얻은 이후부터는 모두가 모세의 오경을 읽고 낭독하고 토론하고 외운다.
저들이 외우는 경전 중에 ‘레위기’가 있는데, 이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안내서이다. 저들의 성전은 붕괴되었고, 자국에서 흩어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성전에서의 제사법을 외우며 토론한다. 이는 말씀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일매일 지키며 걸어야 할 길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이후, 지성소의 휘장은 갈라져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가까이하게 되었건만, 우리의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외우지도 않는다. 지성소에서 매일매일 살아가야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 하는 크리스천들에게서 지성소의 예법이 천시되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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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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