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이자 소설가인 가가(加賀乙彦,1929-)가 일인칭으로 쓴 글을 본란에 어울리도록 조심스럽게 옮겨보았다. “내가 사형수 쇼타 아키라(正田 昭)와 만난 것은, 구치소의 의무관이었을 즈음이었다. 증권사 사원이던 그가 사건을 일으켜 사형선고를 받지만, 옥중에서 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정신과의사로서의 경력이 일천했던 나는 자주 그의 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구치소 근무를 그만두고 몇 해가 지난 후, 나는 다시 쇼타와 편지를, 그것도 한 달에 두어 차례 두터운 편지 봉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문학과 신학, 그리고 옥중생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면서, 살인범에서 가톨릭교도로 변신한 쇼타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성서를 진지하게 읽게 된 것도, 나름대로 절대자를 생각하게 된 것도 모두 그의 덕택이었다...구치소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는, 의무관과 죄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골이 있었으나, 이제 둘은 대등한 친구가 된 것이다. 쇼타가 사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 3일이 지난 후, 알고 지내던 수녀의 전화를 통해서였고, 나는 수화기에 대고 마구 울음을 터트렸다. 쇼타와 같은 사람을 죽이는 사형제도의 잔혹성을 참을 수 없어하면서.
N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1, 2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옥중의 쇼타와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인데, 고인의 유품을 맡아있다는 것. 쇼타의 소설 원고가 있으니 보아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의 원고를 받아 가지게 되었고, N과 나는 편지를 매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는 히메지로 가서 그녀를 만났다.
N은 히메지에 있는 여자 고교의 영어교사. N과 쇼타는 3년에 걸쳐 자그마치 3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말이 쉬워 3백 통이지, 한 주간에 두터운 편지뭉치가 두 차례 꼴로 배달되었다니...
쇼타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쇼타와는 완전히 다른 한 인간을 보게 되어 매우 놀랐다. 내가 알던 쇼타는 착실한 성격에 사색가요 경건한 신자였지만, N에게 편지를 쓰는 쇼타는 익살맞고 유머러스해서 거침없는 농담으로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그런 사나이였다.
이틀에 걸쳐 방대한 편지를 읽고 나자, 인간이란 참으로 멋진 존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관점으로만 타인을 판단하는 노릇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한편 N의 유연하고 여성스런 인품에서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N과 쇼타의 만남이, 나와 쇼타의 만남보다, 인간적으로나 우정에서 몇 갑절이나 깊이가 더 하다는 사실을, 나는 떨리는 감명과 더불어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N이 쇼타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그의 편지를 통해서였다. 익살맞고 유머러스한 편지를 기대하고 개봉한 N의 눈에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마침내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실은 내일이 ”그 날“이라는 것을 아침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문자가 눈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편지가 여느 편지보다 길뿐 아니라, 죽기직전(형장에 가기 10분전)까지 쓴 편지였다는 사실로 해서, 그녀의 상심은 더 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읽는 N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N이 근무하는 여고에서 식사모임을 가졌다. 가톨릭계 학교 교장인 수녀와 쇼타와 편지를 주고받던 또 한 사람 Y수녀도 동석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쇼타가 크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로 떨어져 살고 있었던 네 사람이, 한 사람이 죽은 후에, 한 자리에서 만나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닌가. 장난기 넘치는 쇼다가 천국에서 웃고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주고받은 이야기는, 쇼타의 신앙에 대해서 가톨릭교회 내부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없지 않다는 뜻밖의 사실도 알게 했다. 한 신부는, 사형과 같이 임박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받아들인 신앙에는 무리가 있기에 진정한 신앙일 수는 없다하고 말했고, 또 다른 신자는 쇼타의 신앙은 이성적 신앙일 뿐 영적인 의미에서는 결함이 있다고 했단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이 ‘쇼타와 만나서 사귀었다면 이런 오해를 하지 않았을 터인데’하고...N은 교사를 사직하고 수녀가 되었고, 가가는 1979년에 쇼타를 모델로 한 소설 <선고>(宣告)를 발표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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