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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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가 D구청에 여권 서류를 신청하러 다녀오면서 “아빠, 노래 자랑에 한 번 나가 봐.” 했을 때, 가슴에는 뭔가가 콩닥거렸습니다. 그것은 체면과 욕망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체면이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교수로서 그런 노래 자랑에 나가는 것이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고, 욕망은 평소에 출판 기념회 등을 찾아다니며 축가를 부르곤 했던 데서 오는 자신감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S시인 칠순 기념 회갑 기념 출판기념회에 갔을 때 사회자가 나와는 잘 아는 K인지라, 필자는 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하였습니다. 때마침 자켓 주머니 안에는 제자가 만들어 준 반주  MR도 준비되어 있었던 터라, 나는 선뜻 축가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K는 “글쎄. S시인 하고도 상의해 봐야 할 것 같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더구나 그 자리에는 문단의 원로를 비롯하여 요즘 잘 나가는 작가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K는 S시인의 가족과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더니 잰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그래 정교수. 잘 해 봐요.”
그리하여 유명 성악가들의 축가를 필두로 하여 내 순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출판 기념회가 무르익어 갈 즈음 사회를 보던 K왈, “이번 순서는 원래 식순에는 없지만, 정교수가 축가를 자청해서 부르겠다고 해서 넣어 보았습니다. 한 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의 애창곡인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나는 표정까지 섞어가며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을 감싸안을 듯한 표정과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런 미소가 지나가고, 바리톤 음성이 나오는 구절에 가서는 방송에 나오는 성악가처럼 가슴을 펴고 양 팔을 널찍이 벌리면서  늠름하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구 교수를 비롯한 문인들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킥킥 웃는 것이었습니다. 왜 웃는 걸까. 노래가 끝나고 나와 가까운 사이인 H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H도 킥킥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정과 폼은 그럴 듯한데, 목소리는 영 아니여. 크크크.”
이 말을 들은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나와 버렸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던 지라, 딸아이가 노래 자랑에 나가라고 했을 때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로서 노래 자랑 체험을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출연하게 된 것이 ‘KBS 전국 노래 자랑 1500회 특집 방송’(2010.1.31 방영)이었습니다. 처음 예심이 D구청에서 열렸을 때, 강당 안에는 600여 명 가량의 사람들이 관객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각설이·해군·예비군·밤무대 가수 등의 복장을 하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거들먹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처럼 가디건 차림은 별로 튀어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에이. 나같은 사람이 되겠어? 1차 예심만 하고 가야지.’ 이러던 것이 1차 예심을 무난히 통과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부터 다져진 내 표정 연기가 한 몫 한 것 같았습니다.
2차 예심은 반주기를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으나, 그 역시 나의 표정 연기로 인하여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자가 자꾸만 틀려 구성 작가인 김선생이 몇 번이나 다른 노래를 해 보라고 해서 겨우 통과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음정이나 박자에 별로 신경을 안 썼으나, 이번에는 방송 출연이니 만큼 정확해야 했습니다. 나는 본심에서 “땡”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인터넷 음악을 틀어 놓고 음정 박자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KBS 전국 노래 자랑’에 출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나는 W교회 성가대에서 자신감 있게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할 때에도 철학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철학은 하나님 앞에서 되도록 예뻐 보여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므로 어린 아이가 예쁜 짓을 하듯 ‘하나님, 저 예뻐요?’ 하며 귀엽게 노래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청소년들이 노래하듯 예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상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예쁘게 노래 부르고, 때로는 성악가 흉내를 내 가며 열정적인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복을 주시러 이 땅에 오셨다고 생각하고, 주 앞에서 예쁜 표정을 지으며 노래 부르면 주님이 ‘잘 한다’고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복을 듬뿍 내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예쁘게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나는 주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 주 앞에서 어리광부리지 말고 진지하게 불러라.’ 그 후 나는 자숙하면서 주 앞에서 진지하게 찬양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이것이 주 앞에서 찬양하는 나의 새로운 법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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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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