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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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 2세기까지 내려오던 유대인의 미쉬나 중에는 63개의 항목으로 된 “피르케이 아보트”(Pirkei Avot)가 가장 유명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Ethics of the Fathers”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미쉬나의 1장 2항에 보면 이 세상을 받쳐주고 있는 기둥이 ‘토라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의 예배와, 친절한 행실’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기둥이 서로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시대마다 어느 시기에는 성전 예배가 주를 이룬 적이 있었고, 성전이 붕괴된 이후에는 ‘토라’가 중심이 되었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는 율법사나 서기관들이 제사장들과 쌍벽을 이루며 그들의 세상을 받쳐 주었는데, 역시 금전이 많이 흐르는 은행과 금고 역할을 하고 있던 성전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이나 성전 파수대장이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리더십은 한 사회 안에서 창끝과 같이 서열을 다투는데, 오늘날의 풍토에서도 비쳐지고 있듯이, 금전이 많이 흐르는 대형교회가 순위에서 가장 앞서고, 복음을 맡은 신학교의 교수들은 두 번째 순위에 있다. 만일에 복음을 맡은 자들이 윤리적 권위나 가르침의 권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적 권위는 가장 앞설 것이다. 그러나 사회 윤리적 기초가 되는 ‘토라’의 가치가 중요도에 있어서 성전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보다 뒤떨어지게 되면, 그 사회는 오염되기가 쉬울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 많은 교회들이 도시 안에 포진하고 있고, 매일 같이 예배가 드려지고 사람들을 정결하게 씻기고 거룩하게 하지만, 오염되고 있는 속도와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였음이다.
교회가 주축이 되었던 세상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복음(성경)’을 앞세운 것도, 교회가 사회를 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질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하고 세속에 물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교회의 제도가 모든 일에 있어서 앞서있다 보니,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횡포에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교회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성경을 뜯어 고치는 일들과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들이 빈번(頻繁)하였다. 이러한 경향들은 교회의 중요성을 우선시하고 성경해석을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풍토가 고쳐지질 않다보니, 결국에 가서는 복음은 항상 차선책이 되었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다가 구색을 맞추게 되었고, ‘교회론적인 복음’이 되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다시 거룩하기’를 내 걸고 갖은 애를 다 쏟는다. 하지만 이러한 슬로건이 교회주의를 우선시하는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비쳐질 때에, 겉으로만 거룩해지는 모습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량의 소나기가 퍼부었어도 땅 속으로는 스며들지 못하는 현상으로 결과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사막에 비가 내리면 상식적으로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것 같지만, 비가 표면으로만 흐르면서 와디 같은 강을 만들고, 모랫더미가 흘러가는 것이다. 요즈음 신학자들이 교회의 강단에 서는 빈도도 잦아졌다. 정말 그 학자들에게서 순수한 복음이 선포된다하기 보다는 교회론적인 복음으로 포장되기가 쉬울 것이다.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는 지식인은 교회로부터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서 제한되기 때문이다.
주후 80년경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된다. 이미 그 시기는 교회가 50년의 역사를 가진 때였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와 복음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빌론 음녀와 함께 치부되고 있었다. 계시록 한 장 한 장이 펼쳐지면 심판의 막이 오르고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림은 왜일까? 계시록의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에 계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고, 열두 가지의 열매를 맺는 강가에서 산다. 진정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교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계시록이 기록된 지 10년 후에 가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한에게서 재설정되어 세상에 나온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이면 누구든지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그가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리를 취득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론적인 개념에서 이동되어 개개인의 삶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회 바깥의 개개인의 삶에서는 효율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오늘의 교회는 생수가 흐르는 교회가 되든지, 신도 개개인의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교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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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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