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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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 제1악장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하는 모습은 내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어떻게 눈을 감고 한 시간 이상을 지휘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그의 지휘를 남몰래 골방에서 흉내내며 ‘예술의 멋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강렬한 선율에 맞추어 강하게 지휘봉을 휘젓다가 부드러운 선율에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감미로운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은 카라얀의 폼을 나는 끝내 잊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 S교회 성가대의 지휘자로 서게 된 것은 순전히 카라얀의 지휘 흉내를 낸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주일마다 강한 선율의 악보를 선곡하여 일주일 내내 카라얀 폼을 흉내내며 연습에 연습을 더하였고, 성가대원이 스무 명 남짓의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멋진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내가 그토록 열심히 지휘를 한 것은 현이의 옆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나는 현이의 연주를 귀담아 들었고, 그녀의 손길을 통해서 나오는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꿈을 꾸듯 아름다운 상상을 펼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이가 학생인지라, 결혼을 하려면 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성가대 선배인 Y가 흘린 정보에 의하면, 현이가 직장을 한 3년 다니면서 결혼 자금을 저축해야 결혼이 가능하다네요. 그래서 나는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현이가 빨리 성년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사내가 맘만 먹으면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면서, 어느 날 작심을 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물론 추석 명절을 핑계로 설탕을 한 포대 사들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이는 그녀의 부모님이 계셔서 쑥스러운지 방에서 나오질 않네요.
내가 느닷없이 현이의 집을 불쑥 찾아가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몰라서 그랬는지, 어느 날 나는 지휘자에서 베이스 대원으로 강등되었지요. 그리고 내가 지휘했던 자리에는 현이가 올라섰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이면 현이 옆에 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현이 옆에만 있으면 왜 그리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는지요. 오히려 현이 옆에 있는 여자애한테는 말이 술술 나오는데, 정작 현이에게는 한 마디도 말을 못 붙이는 거 있죠. 거기다가 백화점 선물 세트를 싸들고 현이네 집에 찾아간다는 후배도 있네요. 그러던 어느 날 현이가 성가대원들 앞에서 자신은 약혼자가 있다고 선언해 버리네요. 현이를 좇아다니던 후배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데요. 나도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현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겨우 꺼냈지요.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마 후 아내를 만나 사십여 일만에 결혼하였지요. 6개월 후 성가대장인 장선생이 우리집에 놀러와서 왜 현이와 결혼하지 않았냐고 귓속말로 묻네요. 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아, 약혼자가 있는데, 어떻게 청혼을 합니까?” 했지요. 그랬더니 장선생이 한 마디 덧붙이네요. “당신 후배들이 자꾸만 추근덕거리니까,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그렇게 한 거지이. 아, 나한테 현이가 그렇게 말한 사연이라도 물어보지 그랬어?”
아무튼 이래저래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여인과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나는 한동안 결혼 전의 사건을 잊느라 오랜 시간을 허전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야 나는 진심으로 주님 앞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짝은 하나님이 맺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가 콤플렉스가 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추남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열등감은 여성 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내가 주님 앞에 진심으로 다가섰을 때 주님은 나의 열등감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글재주였습니다. 그래서 30여 년을 글쓰기로 담금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주님께 영감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매달림에 주님은 새벽마다 예쁘고 고운 생각들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가셨습니다. 아침마다 주님이 놓고 가신 영감을 노트에 적어 놓고 감미로움에 젖었습니다. 그리하여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먼저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번 글은 어떻게 써야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가 있을까요. 주님 이번 글은 어떠한 맥락으로 논리를 전개할까요. 이와 같은 대화를 끊임없이 하면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주님이 놓고 가신 영감을 붙들고 글쓰기에 매달리고, 산책을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영감을 떠올리고 하는 동안, 나는 점차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확인해 갈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즐거웠고, 주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것이 한때 사랑하였던 사람과의 이별 후에 생긴 나의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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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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