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하면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박사와 같이, IQ가 높고 냉혹해서 예사로 살인도 저지르는 범죄형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어쩌면 나도?” 하고 생각해보아야할 인품이란다. 미국의 산업심리학자 폴 바비악은 출세한 사람 중에는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아니라고 토를 달면서.
사이코패스는 프레젠테이션 무대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 상대가 좋아할만한 말로 교묘하게 심리를 조종하거나 상대의 약점을 잡아 흔들어대는 따위의 화술을 장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란다. 급격한 변화를 먹이로 성공을 쟁취하는 것이 사이코패스. 언제나 스릴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조직의 혼란을 기회로 삼을 줄 안다. 주저하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 바로 새로운 변혁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혼란을 틈탄 부정행위는 쉬 발각되지도 않는 법, 긴급한 상황은 자신의 자질을 살릴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이 되어 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대체로 성실하지 않는 편이어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 약속은 미루거나 어기기가 일수. 충동성은 자상함을 필요로 하는 협조와 인내를 요구하는 팀워크에는 어울리지 못하는 법. 날카로운 혀를 놀려 존재감은 드러내지만 결과적으로 평가를 견디어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비악의 결론에 따르면, 대체로 사이코패스가 처음 기대만큼은 일을 해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기업을 일으키는 센스는 남달라서 성공하는 예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위험을 즐겨하고 아이디어나 비전을 매력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나.
성공한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애플의 공동창설자 스티브 잡스야말로 가장 세련되고 성공한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달리 빼어난 컴퓨터지식의 소유자도 아니고, 디자인이나 실무적인 경영기술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프레젠테이션과 네고시에이션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이목을 사로잡은 인물이 잡스다. 세상은 그가 제시하는 비전에 취해, 제품의 실제 기능 이상의 것에 현혹되었다는 것. 잡스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왜곡 필드”에 휘둘린 사람들이 크게 한 방 먹은 셈이라고 바비악은 말한다.
잡스는 애플의 다른 기술자나 가족에는 가차 없이 대했는데, 다그치는 수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용할 만한 사람에게는 입에 발린 찬사로 다가 가지만 일단 이용이 끝나거나 대립했던 상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는 것이 그의 경영 자세. 필요에 따라 교제대상을 바꾸고 오래된 지인은 스스럼없이 목을 잘랐다.
아직 하급 기술자였던 젊은 잡스가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애플의 공동창시자)에게 일을 대신해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어렵잖게 처리했고, 잡스는 대가로 5천 달러를 받는다. 그러나 “보수가 700 달러였다”며 친구에게는 3천 5백 달라만 건네주었다.
애플이 성공해서 조직이 커지자 사무적인 일이나 노무관리에서 자상한 인간관계가 요구되고 상호 신뢰가 요긴해지면서 잡스는 애플에서 밀려난다. 그런 모양으로 발전한 조직은 잡스의 입맛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애플이 위기를 맞자 다시 잡스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바비악은 “기업가로 위장하고 있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변화를 즐기고 흥분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항상 스릴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러 일들이 발생하는 상황에 매력을 느낀다. 2. 질서와 순서를 깨뜨리기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는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와는 쉬 익숙해지고, 룰을 무시하는 거칠고 평면적인 의사결정이 허용되는 상황을 잘 이용할 줄 안다. 3. 스스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스탭에게 일을 시키는 능력이 중시되는 리더의 자리야말로 타인을 이용하는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이코패스에게 안성맞춤. 빠른 속도가 요구되는 업종이나 환경일수록, 자신의 도금이 벗겨지기 전에 상황과 직위가 바뀌거나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호한단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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