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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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후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그때부터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역사보다 성경 관주에 의한 짝 맞추기와 누가 말한 것에 올무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인용하면 가장 건실한 신앙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이유
•하나님께 혼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알아내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했습니다.
•나의 삶을 개선하고 내 문제를 고치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로 성경을 꺼내 들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 주장하고 재정적 독립이나 직업적 성취나 우울증의 치료를 위해 성경을 보아야 했습니다.
•성공적인 삶의 원칙을 알아내고자 성경을 뒤져 보았습니다.
•내게 성경은 일종의 점검목록으로 읽었습니다.
•매일 운동하고 비타민을 복용하듯 목록의 항목들에 합격 표시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불신앙인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성경을 형식상이라도 읽어야 했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이 예수님보다도 성경에 더 의지했다는 놀라움은 예수님의 성경이 예수님을 소개해 준 책이라면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이미 내 속에 와 계실 때 지금도 소개해 준 성경을 재해석하고 또 분석하는데 매달려 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마다 자기들이 신성한 문서라고 하는 토라, 꾸란, 모르몬경이 있지만, 이들에게는 신의 존재가 개체적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붙들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하나 된 경험 즉 영적 생명인 것입니다. 이제 최소한 한 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놀랄 그러한 삶 자체입니다.
한 예로 결혼상담소에서 신부를 소개한 모든 자료나 설명을 결혼 후에도 계속 분석하고 조사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가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최소한 한 몸의 삶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는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 귀중한 사실을 안다면 엿세 동안 주님과 동행한 삶에 대한 환상적인 감사의 찬양과 기쁨의 축제가 되는 날이 주일이 될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일 개념에서 죄를 짊어지고 와 실컷 두들겨 맞고 코가 빠져 스트레스 상태에서 파김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살았던 행복의 이야기꽃이 피는 날일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일에 점검받고 지시받고 눈도장 찍고 출석카드 찍는데 열중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을 통하여 양과 소를 잡아 번제물로 드리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매우 평범한 한 몸 관계로서의 삶인데 남편에게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론이나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맞추어 살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부부 된 의미를 알면 매우 행복하고 사랑스러울 뿐입니다. 관계에 대한 것을 지식적으로 가르치려고 할 때 순수한 부부관계는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르칩니다, 그래서 가분수로 만들어 결국 교회가 기형체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의 이유는 주님과의 영적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학문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을 놓쳤다는 증거는 개혁주의생명신학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틈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방법과 경쟁의식에 능숙해 있어도 그에게는 진정한 주 안에서의 행복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기독교계의 최고의 슈퍼스타에게 훈련을 받는 것이 목회 성공이 아니라 내 곁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목회적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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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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