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고향 은백양 나무

                                     강 정 화

바닷바람이 우 하고 몰려오면
일제히 넘어지는 시늉을 하고
산바람이 와 하고 덮치면
일제히 스러지는 시늉을 하고
한 순간도 외눈 팔지 않고
타는 목마름으로 고향 길목을 지키고 섰네
익숙한 몸짓으로 시간을 셈하며 그림자를 누이고
비오면 흠뻑 취한 듯 뿌리 깊이 열정을 갈무리하고
마른날 제 곡조로 신명나게 추는 춤사위 잔잔한데
나 얼마나 떠돌아야 홀로 고향 지키며
흐르는 구름에 깊은 시름 실어 보내고
바람에 생채기 나지 않는 흔들림으로
닿을 수 없는 피안을 꿈꾸는 은백양 나무 되려나.

바닷가 어디 쯤 백양 나무 직립(直立)해 있는 숲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파리 뒷면이 백양의 흰 털 같이 덮여 있는, 일명 은사시 나무라고도 하는 은백양(銀白楊)나무는 가장 서정적 우리 정서가 담긴 나무가 아닐까? 하얀 수피가 달 그늘 처럼 늘어선 숲, 그 곳이 시인의 고향이다.
 바닷바람이 숙명인 듯 은백양 나무를 가르며 지나간다 나무는 순순히 순응하며 넘어지는 시늉을 하고 바람과 화해하며 비파 소리도 낸다. 또 산바람이 와아 덮치면 소나기 소리를 내며 그의 영지(領地)를 지킨다. 온갖 눈 비바람과 폭풍까지도 달래며 나무들의 고향인 시인의 고향을 지켜내고 있다. 때로는 힘들고 고달픈 삶을 신명나는 춤으로 우주적 시간을 쌓아간다.
어디에 비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춤사위는 생명의 신비로움으로 안겨든다. 시인이 지키지 못하는 고향을 은백양 나무는 묵묵히 지키고 있다.바다와 산을 아우르며 춤도 추며 바람의 노래를 부른다.
가끔 은백양 나무로 살아가고 싶은 시인의 꿈은 어디 쯤 있을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피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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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고향 은백양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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