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북쪽 6㎞, 기브아 언덕에는 짓다만 건물 하나가 오랜 세월 풍우를 견디며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근동의 한 국왕이 별장을 짓고자 했으나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된 것이란다. 그러나 저녁 바람이 스산하게 건물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 나그네들은, 2천년도 전에 불운하게 죽은 한 여인의 울음소리일 것이라는 시인의 해설에 의미를 주고 싶어 한다.
<사사기> 19장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에브라임 산골에 사는 한 레위남자가 친정으로 돌아간 첩을 데려오고자 베들레헴에 갔다. 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시는 여부스로 불리던 외국인의 거리 예루살렘을 피해 동족이 살고 있는 기브아에 이른 일행은, 잠자리를 찾다 우연히 만난 노인의 호의로 그 집에서 밤을 지나게 된다. 밤중에 불량배들이 와서 나그네를 내어달라고 떼를 쓰는 그들은 소도미였을까. 바깥 사태가 험악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나그네는 선듯 불량배에게 대신 첩을 내주고 만다.“여자의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 집의 문을 열고 떠나려고 나와 보니, 자기 첩인 그 여자가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었다(사사기19:27).
문맥만으로는, 사나운 사내들에게 첩을 넘겨주었으면서도, 그녀의 안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는 듯이, 레위남자는 가던 길이나 가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첩이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도, 사나이는 “일어나서 같이 가자”하고 말했을 뿐이다. 땅을 치고 통곡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리거나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누가 그의 침묵을 자신을 대신해서 처참하게 죽어간 여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그런 침묵이었다고 보아 줄 것인가.
지나치리만큼 격정적인 히브리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어떤 모양으로든지 슬픔이나 격정을 드러내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을 터. 처참하게 죽은 불쌍한 여인, 그것도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여인의 시신을 앞에 둔 남편이란 자는 아예 감동이란 것을 모르는 냉혈한이었을까?
사나이는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을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첩을 데려오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간 것도 여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의 이목을 위해서, 다시 말해서 레위남자의 체면을 위해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든 과정은 미운 털이 박힌 첩을 없애기 위한 수순이었단 말일까? 싫어지던 참에,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가 주었고, 체면치레로 그녀를 되찾아 오는 길에, 불량배를 만나자, 기다렸던 기회가 왔다며, 내심 좋아하면서, 망설이지도 않고, 첩을 내어준 것일까. 비참한 몰골이 되어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보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그래도 그렇지, 목숨을 걸지는 못할 지라도, 헛기침 정도는 뱉어보는 것이 정상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외국인의 거리 예루살렘을 피해 동족의 땅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으려 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그 판단의 탓을 지지리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여인에게 돌리고자 했던 것일까.
사사기는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사나이는 나귀등에 싣고 온 시신을 열둘로 토막처서 이스라엘부족에게 보내어 복수를 호소한다. 레위남자의 권위를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기브아에서 그가 취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로서 치르게 된 복수전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뒷짐만 지고 있던 자신 대신 분노하고 복수하는 동족들에 대해서 사나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사사기는 구차한 설명만을 남긴다. 그러나 비극을 목격하고 전해들은 보통사람들이 그런 기록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얼마 후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이 왕국의 터를 잡은 곳이 하필이면 기브아. 악령이 사울을 사로잡아 왕답지 못한 짓을 하게 했던 땅이 하필이면 기브아였다니. 어쩌면 사울을 사로잡은 악령은 기브아에서 억울하게 죽은 베들레헴 여인의 혼령이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보통사람에게는 객관적 진실보다는 가슴을 달래주는 전설이 필요할 수도 있으리라.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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