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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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가면 전주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택시비가 약 5600원 정도가 나옵니다. 한옥마을 입구 왼편은 오목대입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전라도에 들어온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를 병사들에게 베풀었다는 곳이지요. 그 입구에서 100여 미터 가량을 들어가면 ‘경기전’이 있지요. 이곳에는 이성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어진이 있습니다. 입구 오른편에 중앙초등학교가 있고,  그 초등학교 뒤편에 ‘최명희 문학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17년간의 자료 고증과 수 년간의 집필을 거치고 1년여 간의 교정을 끝낸 후 『혼불』이라는 대하 소설을 출간한 최정희의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설 문체에 서정의 옷을 입혀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혼을 담은 그녀의 필치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요. 경기전 돌담길과 최명희 문학관 사잇길로 150여 미터를 가다 보면 동문 예술의 거리가 나오고 예전의 동문 사거리가 나옵니다. 그 사거리 왼편 모서리의 남쪽에는 ‘조화당’이라는 제과점이 있었는데, 1960년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나의 큰누님은 매형이 그곳에서 주말마다 단팥죽을 사 주며 청혼하는 바람에 결혼하였고, 내가 그 제과점에서 앙꼬빵을 100원 어치씩 사다 주는 심부름을 한 덕에 큰형과 형수가 결혼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명절 때면 어머니가 떡가래를 뽑는 방앗간은 사거리 오른쪽 모서리에 있었고, 그 옆에는 새벽마다 종소리를 울리며 두부를 파는 두부장수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 제과점에 다다르기 전 왼편에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터가 있습니다. 예전엔 88평의 대지 위에 40평의 한옥이 세워진 매우 아름다운 집이 있었는데, 현재는 삼층 건물이 세워져 있어 옛 모습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나는 문인들과 함께 그곳을 갈 적마다 예전의 한옥을 그려보곤 합니다. 40여 평의 마당에는 제법 굵직한 바윗돌이 죽 둘러쳐진 가운데 소나무와 각종 과실수와 화초 들이 심겨져 있었고, 여름에는 넓은 툇마루 위에다 커다란 모기장을 펴 놓고 7형제가 그 안에 들어가 마당 위의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잠에서 깨어 소변을 보기 위해 오강을 찾다가 그만 20대 처녀였던 누님의 배를 누르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악 소리가 들이자 도둑이 든 줄 알고 큰형은 방망이를 들고 불을 켰고 식구들이 모두 눈을 부스스 뜨면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저기서 “웬일이다냐?” “왜 그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나는 얼떨결에 소리쳤습니다. “소변 보러 오강을 찾다가 그만 누님 배를 눌렀그만이라우.” 그러자 “그려.”, “아따 나는 도둑이 든 줄 알고 간뎅이가 떨어져 나간 줄 알았당께로” 하며 각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소란은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마당 수돗가에서 당시 대학을 다니던 큰형이 양치질을 하며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이. 자가 처녀 젖가슴 만질려고 헌 것 아니여?”
이 말은 10살밖에 안 된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명문 전주고에서 우등생이었던 작은형도 한 몫 거들었습니다.
“그럴 지도 모르지라이잉. 나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책을 본께 야들도 여덟 살만 되면 성욕을 가질 수 있다는디, 누님. 야가 누님 어디를 만졌소?”
누님은 얼룩무늬 원피스의 배를 만지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잠결에 잘은 모르겄는디 배를 누른 것 같혀. 갑자기 누르니께 아프더랑께.”
작은 누나들도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나를 영 엉큼한 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나는 그저 오줌 싸러 모기장을 들추고 나가다가 그냥 누님 배를 누른 것밖에 죄가 없는디.”
그러자 큰형이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야. 솔직히 말혀 봐라. 너 누님 젖가슴을 만지고 싶은 게 아니었어?”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소변 보러 가다가 누님 배를 짚은 것 뿐인디.”
그러자 식구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제지한 분은 어머니였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그런 소리 허들 말어. 이 열 살배기도 안 된 것이 뭘 안다고 너희들이 야단법석이여. 얘가 어렸을 적부터 내가 데리고 다녀봤지만, 네 살 이후부터는 나한테 젖 달라고 허지를 않았던 순수한 애여. 너희들이나 엉큼한 마음 먹지 말고, 우리 막내를 엉큼한 애로 몰아가지들 말어.”
나는 그제서야 나의 진심을 알아 준 어머니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전주 고향집 앞을 지나면서, 나는 어릴 적 한없이 사랑을 퍼 주기만 하셨던 어머니를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이제껏 순수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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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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