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신약교회 운동… 베뢰아 운동의 분열은 막아야
베뢰아 운동의 분열로 가나?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행 17:11, 12).
김기동 목사가 시작한 한국교회의 베뢰아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신약교회 운동이요, 전도운동이다.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시비를 당해가면서도 꾸준히 부흥 발전해온 베뢰아 운동의 중심교회인 서울성락교회가 최근 분쟁에 휩싸였다. 그간 서울성락교회가 추구해온 베뢰아 운동의 방향과 분쟁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베뢰아 운동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김기동 목사의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 의한 신약교회 운동이고, 신본주의 운동이다. 김 목사는 1973년부터 베뢰아 성경공부를 통해 그리스도 중심의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발전시켰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은 성경의 모든 말씀, 즉 창조로부터 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목사는 자신의 집에서 장신대생 11명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1974년에는 총신대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40여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목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들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1978년도에 ‘베뢰아아카데미’가 출범했다. 베뢰아아카데미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도(意圖)’를 깨닫게 되면 성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베뢰아아카데미는 신본주의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의도를 밝히고, 능력의 보편성을 증거하여 믿는 자에게 침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 큰 변화가 일어나 목회현장에 능력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말씀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귀신의 정체를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주장해 이단시비가 알어났다. 사실 귀신의 정체는 성경에서 ‘더러운 영’으로만 불려졌을뿐, 그것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어쨌든 김 목사의 축귀와 능력목회는 큰 성공을 거두어 서울성락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고, 교단과 베뢰아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 결과 베롸아 운동은 한국교회에 능력있는 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다.
분열의 원인은 ‘세습목회’
베뢰아 운동의 분열 배경은 서울성락교회의 세습목회에 있다. 김 목사는 50여년의 목회를 끝내고 은퇴하면서 그의 아들 김성현 목사에게 성락교회 담임과 감독을 맡겼다. 김성현 목사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10여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이다. 김 목사는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목사로서 일할 수 있는 일터”뿐이라고 말해왔다.
그리하여 김성현 목사는 5년여 전에 성락교회의 담임목사와 감독, 그리고 베뢰아대학원대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김성현 목사가 성락교회를 담임한 이후 교인들 간에 그의 설교가 김 목사만 못하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김 목사에 비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는 대형교회를 이룬 큰 목사의 후임이 겪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김성현 목사는 김 목사의 베뢰아아카데미 교육을 거치지 않았다. 베뢰아아카데미 출신이 대부분인 교단내 동료 목회자들과 신학적 갈등이 있었다.
분열의 촉발은 예장통합 이단 사면파동
그런데 김성한 목사에 대한 불만스러운 교인들과 교단 목회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운 것은 통합측 제100회 총회의 이단사면 파동이었다. 통합측은 총회창립 제100회를 맞아 희년의 화해정신으로 교단내외에서 치리를 받았거나 정죄를 당한 사람들을 특별사면한다는 결의를 하고, 특별사면위원회를 구성해 통합측이 이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에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사과하고, 위원회의 원칙에 따른다는 조건으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특별사면을 공포했다.
이때 김기동 목사는 이미 은퇴한 후이므로 성락교회를 대표하여 김성현 목사가 한국교회 앞에 사과했다. 이 사과가 베뢰아 출신들의 심기를 몹시 건드리는 결과가 되었다. 김성현 목사는 “신학적 해석의 비본질적인 요소로 인해 베뢰아 운동이 소모적인 이단시비에 휘말리고 있다”며, “예장통합교단과 화해를 위하여 특정신학 보다는 보편신학에 발맞추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베뢰아로서는 엄청난 양보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특별사면이 이루어져 교회와 교단에 대해 이단시비가 사라졌으면 그나마 김성현 목사의 공이 드러났겠지만, 제101회 통합측 총회가 ‘이단 사면’을 거부함으로써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김 목사 담임목사직 지지파와 반대파와의 충돌
그러다보니 베뢰아 출신 교단 목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며 김성현 목사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교회내의 불만세력과 교단내의 불만세력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성락교회는 김성현 목사가 사임하고,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가운데 원로 김 목사가 담임목사에 복귀했다. 김목사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충정이었겠지만,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기던 반대파가 노골적으로 김목사를 지켜야 한다는 지지파들과의 충돌이 격화되고 말았다. 이번 서울성락교회의 사태는 원로의 이 복귀를 반대하는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간에 분쟁하는 것이다.
베뢰아 운동이 한국교회의 오해와 핍박 속에서 어떻게 여기가지 왔는데, 서로가 한 발짝씩 양보하여 분쟁을 잠재우고 더 이상 분열로 가지는 말아야 한다. 교회는 한번 분열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강>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행 17:11, 12).
김기동 목사가 시작한 한국교회의 베뢰아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신약교회 운동이요, 전도운동이다.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시비를 당해가면서도 꾸준히 부흥 발전해온 베뢰아 운동의 중심교회인 서울성락교회가 최근 분쟁에 휩싸였다. 그간 서울성락교회가 추구해온 베뢰아 운동의 방향과 분쟁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베뢰아 운동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김기동 목사의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 의한 신약교회 운동이고, 신본주의 운동이다. 김 목사는 1973년부터 베뢰아 성경공부를 통해 그리스도 중심의 하나님의 의도 신학을 발전시켰다. 하나님의 의도 신학은 성경의 모든 말씀, 즉 창조로부터 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시 김 목사는 자신의 집에서 장신대생 11명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1974년에는 총신대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40여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목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들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에 의해 1978년도에 ‘베뢰아아카데미’가 출범했다. 베뢰아아카데미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도(意圖)’를 깨닫게 되면 성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베뢰아아카데미는 신본주의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의도를 밝히고, 능력의 보편성을 증거하여 믿는 자에게 침례를 주고 제자를 삼는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 큰 변화가 일어나 목회현장에 능력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말씀대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귀신의 정체를 “불신자의 사후 존재”라고 주장해 이단시비가 알어났다. 사실 귀신의 정체는 성경에서 ‘더러운 영’으로만 불려졌을뿐, 그것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어쨌든 김 목사의 축귀와 능력목회는 큰 성공을 거두어 서울성락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하고, 교단과 베뢰아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 결과 베롸아 운동은 한국교회에 능력있는 많은 목회자를 배출했다.
분열의 원인은 ‘세습목회’
베뢰아 운동의 분열 배경은 서울성락교회의 세습목회에 있다. 김 목사는 50여년의 목회를 끝내고 은퇴하면서 그의 아들 김성현 목사에게 성락교회 담임과 감독을 맡겼다. 김성현 목사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10여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이다. 김 목사는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목사로서 일할 수 있는 일터”뿐이라고 말해왔다.
그리하여 김성현 목사는 5년여 전에 성락교회의 담임목사와 감독, 그리고 베뢰아대학원대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그런데 김성현 목사가 성락교회를 담임한 이후 교인들 간에 그의 설교가 김 목사만 못하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김 목사에 비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는 대형교회를 이룬 큰 목사의 후임이 겪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김성현 목사는 김 목사의 베뢰아아카데미 교육을 거치지 않았다. 베뢰아아카데미 출신이 대부분인 교단내 동료 목회자들과 신학적 갈등이 있었다.
분열의 촉발은 예장통합 이단 사면파동
그런데 김성한 목사에 대한 불만스러운 교인들과 교단 목회자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운 것은 통합측 제100회 총회의 이단사면 파동이었다. 통합측은 총회창립 제100회를 맞아 희년의 화해정신으로 교단내외에서 치리를 받았거나 정죄를 당한 사람들을 특별사면한다는 결의를 하고, 특별사면위원회를 구성해 통합측이 이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에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사과하고, 위원회의 원칙에 따른다는 조건으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특별사면을 공포했다.
이때 김기동 목사는 이미 은퇴한 후이므로 성락교회를 대표하여 김성현 목사가 한국교회 앞에 사과했다. 이 사과가 베뢰아 출신들의 심기를 몹시 건드리는 결과가 되었다. 김성현 목사는 “신학적 해석의 비본질적인 요소로 인해 베뢰아 운동이 소모적인 이단시비에 휘말리고 있다”며, “예장통합교단과 화해를 위하여 특정신학 보다는 보편신학에 발맞추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베뢰아로서는 엄청난 양보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특별사면이 이루어져 교회와 교단에 대해 이단시비가 사라졌으면 그나마 김성현 목사의 공이 드러났겠지만, 제101회 통합측 총회가 ‘이단 사면’을 거부함으로써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김 목사 담임목사직 지지파와 반대파와의 충돌
그러다보니 베뢰아 출신 교단 목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며 김성현 목사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교회내의 불만세력과 교단내의 불만세력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성락교회는 김성현 목사가 사임하고,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가운데 원로 김 목사가 담임목사에 복귀했다. 김목사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충정이었겠지만, 이를 마땅치 않게 여기던 반대파가 노골적으로 김목사를 지켜야 한다는 지지파들과의 충돌이 격화되고 말았다. 이번 서울성락교회의 사태는 원로의 이 복귀를 반대하는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간에 분쟁하는 것이다.
베뢰아 운동이 한국교회의 오해와 핍박 속에서 어떻게 여기가지 왔는데, 서로가 한 발짝씩 양보하여 분쟁을 잠재우고 더 이상 분열로 가지는 말아야 한다. 교회는 한번 분열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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