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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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10.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

엘리야 당시 아합은 북방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남방 유다에도 신앙적으로 선한 왕 보다는 악한 왕들이 더 많았다. 유다의 열 두 번째 왕 아하스의 통치 기간 중 유다의 배도와 타락은 극도에 달했다. 이전에 우상숭배에 저항해 오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심지어는 제사장들 중에서도 아하스의 권력과 위협에 굴복하여 우상숭배에 적극 가담하므로 하나님 예배를 가장한 거짓된 의식을 통하여 유다를 타락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그들을 견책하며 하늘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였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0~12).
오늘날에도, 신실한 믿음 없이 친교를 위하여, 사업상 거래를 위하여, 사회활동의 하나로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러한 배도와 타락을 주도한 아하스 왕의 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다의 개혁에 앞장섰던 히스기야 왕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를 이어 왕이 된 그 아들 므낫세는 할아버지 아하스의 기질을 받아서 또 다시 유다를 타락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 왕도 여전히 악한 왕이었으나 그 다음 대(代)에 또 이변이 일어났다.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는 유다를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하고 부흥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닮지 않은 두 아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히스기야의 예배 개혁 사업
북방 이스라엘이, 배도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앗수르에게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국운이 쇠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 히스기야 왕은 북방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의 부흥과 개혁을 착수하였다. 우선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봉사의 회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대하 29:6) 우상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대하 29:10)라.
왕의 이러한 요청과 독려에 힘을 얻은 유다의 경건한 지도자들은 즉시로 힘을 모아서 성전의 문들을 고치고 제단을 보수하고 성전의 거룩한 도구들을 제 자리에 놓고 하나님께 제사하며 예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왕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제물을 드렸고, 먼저 자신들의 죄악과 함께 온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성전 문들이 닫혀있는 어두운 세월동안 희망을 잃고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방황하던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감동하였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온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부흥이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지도자들을 용기를 내어, 여러 해동안 지키지 못했던 국가적인 유월절 축제를 다시 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북방 이스라엘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였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대하 30:26).

지도자의 책임과 사명
옛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의 운명은 왕에게 달려 있었다. 선하고 영성이 있는 왕을 만난 백성들을 행복하였고, 악한 왕을 만난 국민들은 불행하였다. 그만큼 지도자의 정신과 영성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한 사람의 인품과 신앙과 능력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우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하고 경건하게 서야 한다. 지도자나 목사들은 백성들에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본을 보이며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개개인의 영생과 영멸에 영향을 주는 목사의 역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매우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순간순간 자아를 살피며,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목사는 대접을 받는 직업이 아니라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시야의 율법회복 개혁
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심성을 가진 신앙심이 깊은 왕이었다. 8년 후 16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순종하며 살 것을 결심하였다. 20세가 되면서부터 요시야는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대하 34:3)렸다. 그리고 그 제단의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대하 34:5) 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
요시야가 26세가 되었을 때 성전 수리를 시작하였다. 성전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제사장 힐기야가, 오랫동안 잊혀진 바 되었던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100여 년 전 히스기야의 개혁을 통하여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을 때에 매 절기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주는 법이 제정되었다. 히스기야의 체세동안에 나라가 번영했던 것은, 백성들이 율법책을 읽고 들으며 그 언약의 책에 주어진 법도를 즐겨 순종한 결과였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 모든 규례와 법도를 버렸고, 그의 부주의와 태만 때문에 율법책의 사본을 잃어버렸다. 이리하여 백성들을 그 귀중한 교훈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여러 가지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왕에게 전달하였다. 왕의 요구에 따라 사반이 그 율법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왕은 자기의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대하 34:21).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긴급하게 소집하여 성전으로 올라갔고, 그 때에 모든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함께 모였다. 왕이 직접,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왕하 34:31)고 천명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이 말씀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왕의 결심과 결단으로 유다 나라에 감동적인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대하 34:33)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선두에 서서 교단과 각종 조직체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들이, 요시야의 정신으로 개혁사업을 시작한다면 한국 기독교회는 수년 내에 큰 부흥과 개혁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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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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