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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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은 명령이나 가르침이나 권위로 안 되기 때문에 직접 오셔서 죄인과 코드를 맞춰야 합니다. 이 방법이 예수님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목회는 방법이 아니라 삶입니다.” 데이비드 한센 목사는 말했습니다. 한 시골 목회자의 진솔한 삶과 그의 목회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구속적 사명을 모방하려는 잘못된 생각에서 피조와 창조주간의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사명자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질했던 험악한 로마 병정처럼 사력을 다해 사람들을 내어 몰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아주 좋아 보이는 말이나 단어들이 현실감 없는 지겨운 용어로 거짓말하는 말로 자신을 속이는 위선적인 행위의 반복을 신앙이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해방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구속적 대신 속죄의 역할이 아닙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비전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창조주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강대상에서 외치고 있는 목회자들의 ‘말씀’은 그들 자신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소리 지르는 그럴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 자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위선이 위장된 상태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위선으로 돋보이려는 모든 장치입니다. 강단을 높이는 일, 강대 상, 제단 상 뒤에 붙인 십자가 휘장들, 꽃꽂이들, 위엄 있어 보이는 성구들, 호화로운 교주형의 가운 위에 걸친 스톨들, 마치 현대 가격의 평가로 2억에 가깝다는 제사장들이 입었던 금과 보석을 주렁주렁 단 에봇이나 사람의 마음을 신 들리게 하는 음악 기구들이나 빈틈없는 곡들이기도 합니다.
강단에서 모든 실수를 덮으려는 이러한 위장된 형태가 바로 자기의 약점을 덮으려는 마귀가 준 장치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을 모방하려는 것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일들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시키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것인데 우리는 지금도 그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회 현장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적 권위를 모방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우상종교적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평안이 아니라 숨 쉴 사이도 없이 쫓기는 삶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에 의한 삶이라면 우리는 우리라는 정욕에서 생산되는 자기중심적인 불안입니다. 예수님은 순수하시고 순결하심에 우리는 탐심이 가득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하시되 우리는 복잡합니다. 예수님은 목적이 분명하시지만 우리는 땅에 매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귀중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놀랄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드렸다면 예수님도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을 집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무 리가 일삼아 하는 실수가 문을 닫아놓고 사는 습관입니다. 이 말을 아주 쉬운 말로 하면 매임 병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꼼짝없이 매여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만들어놓은 칸막이적 삶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의 특징이 두문불출하는 것입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는 것이 자기 순결을 지킨다는 수도사적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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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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