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12. 다니엘과 세 친구의 위대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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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치세가 끝나면서 이스라엘은 남방 유다과 북방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추종하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남방 유다를 세웠고, 나머지 열 지파는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따라 북방 이스라엘 왕국을 만들었다. 북방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하기까지 19명의 왕이 있었고, 남방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20명의 왕이 일어났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히스기야나 요시아를 비롯한 극소수의 왕 이외에는 모두가 악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 지도자의 부실함과 불안정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의 완전한 지도자는 하나님 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왕들의 무능함과 실책 때문에 나라는 늘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국가는 피폐해져 갔다. 남방 유다의 계속적인 배도와 타락의 결과로 당시 신흥 강대국으로 등장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유다에 징벌이 내려지려 하고 있었다.

예레미야를 통해 보여준 행동화된 비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한 가지 특별한 일을 시도하였다. 그 당시 가장 경건하고 자신들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로 알려진 레갑 사람들(겐 족속 요나답의 후손들 : 왕하 10:15,16 참조)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성전의 한 방으로 그 사람들을 모은 다음 포도주를 차려 놓고 마시도록 권하였다. 레갑 사람들은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유는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렘 35:6)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조의 명령을 200년 이상 충실히 지켜온 레갑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조시켜서 그들의 불순종과 배도를 깨닫도록 하셨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지 다소나마 느낄 수 있다(렘 35:14~17).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뜻을 정한” 다니엘
마침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 바벨론을 통해서 내리기 시작하였다.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하여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성전의 기물들도 탈취해 갔다. 이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유다 포로들에 대하여 특별한 정책을 세웠다. 유다의 왕족들과 귀족들 가운데 총명하고 탁월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왕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그들을 바벨론화 시켜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익숙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을 시도한 것이다. 이 교육 과정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원칙을 고수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확고한 입장을 취하였다. 왕궁에서 제공하는 기름지고 화려한 육류 위주의 식단을 거부하고 깨끗한 물과 채식을 요청하였다. 교육 책임을 맡은 환관장은 매우 황당하였으나, 10일의 시험 기간을 거친 다음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다니엘의 요청대로 채식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단 1:20).
성경에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내용들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속성은 거의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교훈이나 일상생활에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 오늘날 우리 각 개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요청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리와 생리와 인체의 필요를 정확하게 아시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가장 건강하게 건전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결코 인간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유익과 축복이 된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뜻을 정하여”(단 1:8) 바로 이 선택을 한 것이다. 결과는 큰 축복이었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진리’로 인정하여 믿고 순종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별도의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자체(순종의 열매)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 국가의 영원한 존속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고 그 낙성식에 나라의 모든 관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낙성식의 핵심적인 의식은 당일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절을 하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단 3:6) 죽일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감히 절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요동치 않았고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들은 즉시 왕 앞에 붙잡혀 갔다. 왕은 그들이 평소에 매우 충실하고 탁월한 청년들이라 죽이기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살려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절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단 3:17)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라고 공손하면서도 확고한 모습으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호의를 무시하는 이 괘씸한 청년들에 대하여 왕의 분노가 격발되었다. 풀무불을 칠 배나 뜨겁게 하여 그들을 집어 던져 넣었다.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네 사람이 풀무불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온 사자가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목도한 왕과 모든 관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단 3:28).
오늘날 이 시대에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므로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이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굳건하고 순결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종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희망이고 능력이다. 교회의 개혁은 어떤 전략이나 이벤트나 서적이나 설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 같은 확고부동한 믿음의 전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본을 보이면서 전진할 때에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다. 변화나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바라봄’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그의 양심적이고 확고한 신앙과 인품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실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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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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